♧ '나비의 꿈'에서
………
우리에게서 어머니가 떠나갔듯이 나비도 자꾸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나비는 세상의 혼돈과 소음을 싫어한다. 이 꽃 저 꽃 다니며 수분(受粉)을 나누어주면서 온갖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기약하고 축복한다. 연약하면서도 한없는 사랑으로 꽃에 보시(普施)를 베풀고 만물의 전령사가 되어준다. 그러면서도 나비는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피해 정적 뒤로 숨는다. 소음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건지 고요를 편애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나비는 세상의 모든 혼돈으로부터 은둔하고자 한다.
세상은 갈수록 섬을 집어삼킬 듯이 밀려오는 태풍 같은 혼돈과 소음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보잘 것 없는 그림자에 불과한 나비는 이제 태풍이 휘몰아치는 바다에 무력하고 외롭게 서 있는 등대처럼 자신의 신세가 슬프다. (…)
멀리 한라산에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해가 지고 나면 산골 동네에는 고요와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산골의 밤은 언제나 평화롭고 여유롭다. 어두운 밤하늘의 달과 별은 멀리 개 짖는 소리를 들으면서 주변을 밝혀준다. 어두운 길 위에서 나비는 제 갈 길을 잃은 채 어딘가를 서성이고 있을 것이다. 나비의 등에는 시린 초승달이 새파랗게 걸려 있다.
주머니 속에서 갑자기 휴대폰의 수신음이 시끄럽게 울린다. 굉음에 놀라 어디선가 꿈꾸며 날아다니던 나비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한다. 드리워지는 산 그림자가 동네를 길게 물들이고 있다.
♧ '나비와 요가'에서
………
오늘따라 나비가 되고 싶어진다. 복잡하고 허망한 인간사에서 벗어나 무념무상의 상태로 훨훨 날고 싶다. 온 힘을 다해 나비와의 교접을 시도하지만 좀처럼 소식이 없다. 온갖 번뇌로 가득 찬 나에게 나비가 쉬이 찾아올 리가 없다.
혼신을 기울여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 본다. 아, 드디어 나비가 손을 내밀었다. 투명한 날개를 펼치고 나비와 함께 날기 시작한다. 가슴 속 가득 쌓여있던 걱정과 번뇌가 흩어지며 사라진다. 나비가 훨훨 날아오른다. 나도 한 마리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고 있다.
*고연숙 수필집 『노을에 물들다』(수필과비평사, 2020)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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