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윤병주 시 '과메기' 외 4편과 풀고사리

김창집 2021. 3. 15. 00:32

과메기

 

바다를 지나온 고단한 별이 흘러내린다

바다에 살았던 삶과 생이 마르기 전

겨울의 허전한 공복의 무게를 거칠게 매단 채

바다에 푸른 생을 두고

알몸으로 북서풍에 매달린 순례자

 

구름을 숭배한 어떤 이름으로

눈구름을 따라가면

그의 몸도 소금꽃이 될까

얼 수도 녹을 수도 없는 날을

마른 영혼이 건너가고 있다

차가운 겨울 해풍을 몇 번 맞아야

어떤 이름 하나 얻을 수 있을까

 

로드 킬 Road kill

 

죽은 산짐승의 몸을 지나간다

한낮의 햇살들도 이곳으로 내려와 마지막 조문을 한다

나는 잠시 죽음 전의 삶을 생각했다

약육강식의 서열에 밀려와 도로를 건너지 못하고

빛을 따라와 차에 치여 죽었을까

 

어디서 썩는 냄새를 맡았는지 까마귀들이 먼저 와 있다

육감의 몸을 숨기고 산에서 그 만큼 살았으면

제 몸 하나 둘 곳이 어딘지 알만도 하건만

하필 길 위에 몸을 던진단 말인가

 

언제 상한 냄새를 따라 왔는지

고양이들이 시퍼런 눈빛으로 발등을 물고 있다

 

풀잎들 충혈된 눈으로 명복을 빌어 주듯이

풀냄새로 썩을 몸을 건너 주었고

이승의 마지막 보시일지도 모를 길을 열어 놓았다

 

나는 물린 발쪽의 침침한 한 생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까마귀와 고양이들의 잔치도 끝나가고

죽음을 생각하면 우리의 삶은 너무 멀리까지 간

구름과 눈물을 불러와야 한다

죽은 산짐승을 지나는 길 사이

어떤 시간의 자국들이

검은 버섯을 피우고 간다

 

귀촌일기

 

아내는 삼복더위에 밭을 맸고

나는 바다에서 술을 마셨다

산 그림자가 짙어지던 집

아이들은 여름내 비눗방울을 불며 놀았다

 

농작물들이 애타게 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른 시냇가 나무들이 물주머니를 터트리듯

맹렬하게 끓어오르는 벌레 소리를 들으며

우리 가족은 늦은 저녁을 먹었다

 

산골 생활이 지루해진 아내는 하염없이 한숨을 쉬었고

나는 산새처럼 울고 있는 아이를 업고 바람길로 나섰다

고요가 어지럽게 앉은 여름밤

담쟁이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담장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산목련

 

비가 언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고 나니

봄 하늘이 송사리 떼가 지나간 물처럼 투명하다

봄 농사일이 한참인데

나는 몸이 아프고 밥맛이 씁쓸하다

 

가끔은 척도를 벗어난 곳을

고치고 달래며 살아가야 하는데

 

산맥의 바람과 후미진 곳에 몸을 숨겼던

한낮의 뜬 별처럼 바람을 삭히며

나무 위 꽃들이 몸을 열어 놓았다

 

몇 날을 깊은 잠에 들어서지 못했다

아픔이 지나고 나니 고단한 낙타가

살아온 짐을 벗고 큰 영을 넘듯

바람의 공적으로 핀 꽃들이 가까이 와 있다

 

꽃잎이 구름처럼 살고 있는 이 산중에서 나는

바람에 밀려온 사람처럼 혼자 늦은 저녁을 먹는다

 

늙은 어부는 생선을 말린다

 

말라가는 생선들이 집을 지키고 있다

팔뚝 굵은 사람들은 바다로 갔고

비탈길 위 집 곁에 있는 건

오징어와 문어들의 생기 잃은 눈동자를 파먹는 저녁 햇살과

스산한 바람이 전부이다

 

위험한 겨울 집 건조대를 꽉 채우며 생선을 널던

힘쓰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빈집에 떨어진 동백꽃을 새들이 날아와 쪼아대고 있다

 

금어기가 오던 봄도 큰 고기가 여물어 살을 말리던 날들도

문병 오듯 가파른 집을 잠시 다녀갔을 뿐

등 굽은 바다는 늙은 어부를 향해 뱃길을 흔든다

바닷가 마을 닻줄 같은 바람이 돌아오면

허한 가슴 어디쯤 바다의 통점을 보며 늙은 어부들이 살고 있겠지

 

해풍을 먹은 생선들이

여름의 태양을 기억해 내려는지

허름한 집 이곳저곳에 구멍을 내고 있다

늙은 어부 등 굽은 바람이 시름의 숲길을 서성이다가

마른 생선 쪽을 지나고 있다

 

 

                            *윤병주 시집 풋사과를 먹는 저녁(현대시학시인선 060, 202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