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 싱그는 사람을 생각한다 - 김수열
나무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숲을 무너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새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그들의 보금자리를
여지없이 쓰러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숲은
피 흘리지도 않고
통곡소리도 내지 않아서
그저 무감하게 숲을 무너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이라는 직립보행은
새들의 노랫소리와 울음소리를
ᄀᆞᆸ가를 만큼 진화하질 못해서
멍텅하리만큼 멍청해서
아무런 아픔도 어떠한 느낌도 없이
나무의 밑동에 톱날을 들이댄다
톱날의 살벌한 기계음에 쾌감을 느끼고
파편처럼 흩어지는 나무의 살점을 만끽하다가
그 속도감에 절정을 이룬다
나무가 잘린 그날 이후 밤이면 밤마다
초록의 정령들이 수도 없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길
보았다고 붉은해오라기가 맹꽁이에게 하는 말을 엿듣고
잘린 나무 곁에 낭 싱그는 사람들이 있다
하늘 가장자리를 서성이던 초록의 정령들은, 어스름 새벽
돌아갈 집이 없어 그루터기 주변을 헤매는 걸 보았다는
애기뿔소똥구리와 팔색조의 속삭임을 귀담아 듣고
잘린 나무 곁에 낭 싱그는 사람들이 있다
톱날에 잘려나간 나무의 나이테에
새로이 나무의 영혼을 심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쓰러진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어 장승을 만들고
나무의 기억을 되찾으려 잘린 나무의 그림자를 만들고
불편한 팔과 다리를 이끌고 잘린 나무 곁에 앉아
죽은 나무의 나이테를 온몸에 새기는 사람들이 있다
나무와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의 어우러짐을 꿈꾸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있다
태초의 인간에게 나무는 신神이었다
산육과 치병을 빌었고 풍농과 풍어를 빌었다
지상의 신들이 하늘 옥황으로 흐르고
하늘 옥황의 신들이 지상으로 내릴 때
나무는 길목이었다
하여, 나무 한 그루 심는 일은
하늘로 오르는 신의 길목을 내는 일이며
우리의 내일을 하루만큼씩 이어가는 것이고
한 그루의 나무를 베는 일은
하늘에서 내리는 신의 길목을 끊는 일이며
우리의 내일을 하루만큼씩 줄여간다는 것이다
인간 없이 나무는 수천만 년을 살아왔지만
나무 없이 인간은 단 하루도 살 수 없는데
둘러보면 지구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종이 산다
하나는 열심히 낭을 싱그는 인간종이고
다른 하나는 끊임없이 낭을 그치는 인간종이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나?
*김수열 신작 시집 『호모 마스크스』(아시아, 2020)에서
*사진 : 요즘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목련(자생종, 집에서 심는 백목련과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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