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과 참 달다
바람 끝에 매달려 햇살에
속 터뜨린 석류처럼
알알이 제 속 내보이더니
내게 사과 한 알을 건넨다
머뭇거리는 손 꼭 잡는 그녀
두 볼은 잘 익은 사과 빛으로 물들어 있다
“받아줄래, 사과?”
한입 베어 무니
사각거리며 들리는 어제 일
가슴 깊숙이 박힌 씨
어차피 버려야 할 것인데
입안에서 맴돌던
시큼텁텁한 산酸이 빠져 나간다
침샘에서 목으로 꼴깍 넘어가는 이 달달함
사과 참 달다
♧ 바람을, 바람이 흔들어
시간을 담는 마을 쉼터
고목 가지마다 잔설은 남아
옷소매를 여미게 하는데
미수米壽를 바라보는
강 씨 할아버지 주름진 얼굴엔
미소가 벚꽃처럼 꽃망울을 터트린다
깔깔거리며 고목에 꽃이 피었다고
동네 아낙들 웃음소리
고목의 굽은 허리를 휘감아
나이테 깊숙이 박힌 생채기를 후빈다
꽃샘바람보다 더 매서운 저, 웃음소리
차가운 눈초리로 심장 끝에 멈추어
떨리는 호흡의 한줄기 바람을, 바람이 흔들어
후드득 꽃잎 떨어진다,
소낙비처럼
♧ 몽돌
바람이 소리 없이
울먹이며 서성일 때
파도는 소리쳐 울부짖으며
작은 가슴을 울린다
다독이며 보듬어 안는 눈가엔
눈물이 고이고
바라만 보아도 명치끝 저리는 아픔
응어리 굴리며
끝없는 윤회의 길목을 따라
깎고 다듬는 시간의 틈으로
단단한 몽돌 하나 나를 품는다
♧ 툭, 떨어져
떨어진 꽃잎 한 송이
내 가슴으로 아프게 스며들어
생생하게 그려지는 얼굴
어미의 애끓는 울부짖음도
매정하게 뿌리치고
뒤 한 번 돌아보지 않는
동백꽃처럼 툭, 떨어져
어미의 눈가에 내려앉아
이슬로 흩어지고 또 흩어진다
툭 떨어져 시린 햇살에
흩어지고
다시 흩어진다
♧ 꽃을 피우다
괭이*진 심지 끝 생명수 끌어올려
세월의 가냘픈 실 따라
누구를 향하여 초롱등 다셨나
적막한 불빛 꺼질까
침묵을 삼키며 기다린 그 바람
기어이 다가가지 못한 아쉬움
심지心志를 돋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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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궹이 : ‘손바닥이나 발바닥에 생기는 단단하게 굳은 살’의 제주어.
# 이무자 시집 『비틀거리는 언어』(다층, 2017)에서
# 사진 : 요즘 한창인 완두콩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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