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산어보 홍어편 - 박흥순
느그들 아냐
입맛 다시며 환장하게 좋아하는
나의 출생지가 어디 콧구멍에 붙었는지
파도가 말이여 시퍼렇게 흰 거품을 물고 늘어지는 곳
그랑께, 갈매기가 똥을 싸갈겨도
파도가 금시 꿀꺽해 불고 눈 깜빡해 부리는 그런 곳이여
긍께, 나는 그 바다 속에선 완전 무용수였제,
내가 너울너울 춤을 추기 시작하면
상쾡이도 한목 거들다 챙피하다고 내빼부럿당께
거시기, 거기가 어디냐문
정약전 선상이 자산어보를 긁었다는 곳이제
근데 말이여, 나는 지금 두엄 속에서
숙성의 도를 당신에게 맛 봬 줄라고
벌러덩 누워 있어라우
코가 쏴한 코빼기 한 점
아자씨 입속에서 꿀꺽 넘어가게 해 줄 것잉께
막걸리 한 대빡 옆에 놔두고
째끔만 기다려보쑈잉.
♧ 갯메꽃 피는 마을 가는 길
고향마을 앞에는,
저, 파도가 끝나는 곳은 어떤 세상일까
동경하던 바다가 있었네
수통게, 꽃게, 문저리, 꼬막 잡던,
뱃고동소리 들리면 마음 설레던 바다.
빨가벗은 몸에 뻘칠을 하고 낄낄대던 꿈의 바다,
파도 가르며
섬과 육지 오가며
뱃고동소리 울리던 여객선에는
욕쟁이 할머니 유학 간 손자사랑의 보따리도
동생 공부시키겠다고 공장으로 간 영순이 마음도
서울에가 마음껏 헤엄치고 싶다던
만천 이 꿈도 가득 실려 있었네.
지금은
그 꿈 찾아
키보드소리 길잡이로
갯메꽃 피는 마을 찾아가고 있다네.
♧ 한낮의 짱뚱어
나는 지금 갯벌에서 머드팩 중이야, 구릿빛의 날씬하고 매끄러운 몸매 드러내놓고 한낮의 햇살을 만끽하는 중이지, 나는 말이야, 등줄기에 말갈기 같은 지느러미가 있고 머리통 위에는 서치라이트 같은 두 눈이 툭 불거져 나와 있어, 글쎄, 나는 물고기면서 날고 싶을 때가 있거든, 그때는 등줄기의 지느러미를 냅다 퍼덕거리며 용을 쓰지 그러면 말이야, 내 몸뚱이가 허공으로 날아올라,
허공에서 바라보는 뻘밭이 어떤 줄 알아 당신
당신은 어땠어? 뻘같은 세상에서 한번 날아보기나 했어?
그런데 말이야, 나는 지금 낚시꾼이 잡아채는 멍텅구리 낚시 바늘에 옆구리가 찔려 끌려가는 중이야 사실 난 말이지, 뻘밭을 벗어나고 싶어서 날았던 게야, 또 다른 세상이 궁금하고 그리웠던 게지, 그래서 생각했어, 높이 날아보면, 멀리 날아보면, 그 꿈이 이루어질 거라고, 멀리, 높이 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어, 나의 결정적 실수는 툭 불거져 나온 서치라이트 같은 내 두 눈으로 사방을 주위 깊게 살펴보지 않았던 게야, 당신 말 좀 해봐,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게지?
♧ 그대와 함께 갯벌로 가고 싶다
갯벌이 옷을 벗고 가슴을 내보이기 시작하면
그대는 가래로 갯벌의 가슴을 파헤쳐 낙지를 잡아내고
나는 갯벌의 혈관 속에 낚싯줄을 드리우는
그렇게 갯바람 같은 한철을
그대와 살았으면 좋겠다.
그대는 더 많은 낚지를 바랑에 넣기 위해
쩍을 밟고서라도 가래질을 하고
나는 갯골에 밀물이 밀려와도
한 마리 물고기를 바구니에 더 넣기 위해
가난한 파도소리가 되어가면서
그대와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그대와 함께 갯벌로 간다는 것은
달려오는 흙탕물이
갯벌을 통째로 삼켜도
태초부터 조간대의 아버지는 달이었다고
갯벌도 그 달의 새끼라고
그대와 갯멧꽃 바라보며 웃을 수 있기에
그대와 함께 갯벌로 갔으면 좋겠다.
♧ 망둥이 처세술
우리들이 살아가는 데도 확실한 법도가 있다우
낚시꾼이 던진 낚시 바늘을 덥석 물었다
주둥이가 찢겨 나가도
우리는 그딴 건 오래도록 품고 있지 않아요.
그딴 걸 오래 품고 있으면,
짱뚱이처럼 뛸 수 있는 용기가 생길 수 없거든
우리는 말이우
찰나의 선택은 놓치지 않는 머리라우
멍청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남았겠수?
*박흥순 시집 『장다리꽃』(문학아카데미, 2020)에서
*사진 : 갯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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