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수열 시 '달보다 먼 곳' 외 2편

김창집 2021. 4. 10. 08:59

달보다 먼 곳

   -김시종

 

  오사카 영사관으로부터 귀국 권유 받은 적 있었습니다 광주항쟁 시집 준비하는 걸 알고, 방일 준비하던 전두환 쪽에서 체면이 안 섰는지, 서울에서 출판하라 압박했습니다 제주43’에서 살아남은 자로서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김영삼 때, 서울문학인대회 초청 받았는데, 영사관에서 다음 방한에는 한국국적으로 바꾼다는 서약서 강요했습니다 조선적朝鮮籍이던 나는 거절했습니다 주최측 노력으로 어찌어찌 참가는 했지만, 행선지는 서울로 한정되었습니다

 

  43 진상규명에 나선 김대중 대통령 때에야 조선국적 임시 여권으로, 1949년 도일渡日하고 처음으로, 처음으로 제주에 올 수 있었습니다 항쟁 당시 희생된 동지들 뵐 낯이 없어 마음 무거웠는데, “어서 오세요조카딸이 울먹이며 나를 안아준 게 구원이었습니다

 

  무성한 가시덩굴 안쪽 무덤 두 개 나란히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지 40년 된 양친입니다 처음 뵈었습니다 무릎 꿇고 송아지처럼 울었습니다 남은 인생, 해마다 성묘하고 싶어 2003년 한국국적 취득했습니다 그해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 제주43국가권력의 잘못이라 인정하고 공식 사죄했습니다

 

  일본으로 건너간 지 반세기, 제주는 참 멀었습니다

  달보다 먼 곳이었습니다

 

데칼코마니

 

1

1968년 정월 24일 베트남 하미마을

대한민국 청룡부대

가가호호 구석 찾아들어

마을 주민 30가구 135명 몰살

 

모레 뒤섞인 시신에는 마른 피 고여 있었고

어린 아기는

차갑게 식은 어미 가슴에 기어올라

영문도 모른 채 젖을 찾았다

 

화염에 익은 살점 위로 개미떼가 몰려들었다

 

2

1949년 정월 17일 제주도 조천면 북촌리

국방경비대 2연대 3대대

국민학교 인근 당팟 옴팡밧

마을 주민 400여 명 학살

 

밭담 언저리엔 시신들 뒤엉켜 있었고

어린 아기는

죽은 어미 마른 젖무덤에 올라

코 박고 꼼지락꼼지락 허둥거렸다

 

돌담에 널린 시신 위로 까마귀떼 내려앉았다

 

다시 쓰는 최후진술

 

 나, 도마 안중근은 대한의군 참모총장 자격으로

 적장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하였으므로

 나를 일반범이 아닌 국사범으로 다루라

 

 내가 적장을 사살한 곳, 하얼빈은

 러시아 소재지이므로 적국 일본은

 나를 재판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

 당장 손을 떼라

 

 뤼순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하던 안중근은

 적장 척살 5개월 만에 형장에 이슬이 되고 말았으니

 그의 나이 서른하나

 

 중국총리를 지낸 저우언라이는 후대에 이렇게 말한다

 -청일전쟁 후 한중 양국 국민의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반대투쟁은 금세기초 안중근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면서 시작되었다

 

 

                                    *김수열 신작 시집 호모 마스크스(아시아, 2020)에서

                                                           * 사진 : 탱자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