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이병철 시 '내 슬픔은' 외 3편

김창집 2021. 4. 12. 17:21

내 슬픔은

 

내 슬픔은

파도로 출렁이는 바다 같네

작은 바람에도 물결이 이네.

 

내 눈물은

동이에 가득 담긴 물과 같네

조금만 흔들려도 쏟아지네.

 

그 너머

 

너는 그 너머에 있다

 

눈에 보이는 자태 너머

귀로 들리는 소리 너머

손이 가닿는 촉각 그 너머에

만질 수는 없지만 느껴지는

네가 있다

꽃이 피고 지는 것 너머

빛과 그림자로 지어진 형상 그 너머

드러나 있는 나로서는 가 닿을 수 없는

가깝고 먼 그 너머에

언제나 어여한 네가 있다

한 번도 헤어진 적이 없지만

여태 뜨겁게 안아보지 못한

반갑고 그리운 네가 있다

 

너는 그 너머에 있다

빈 배로만 가닿을 수 있는

그 너머에

 

초행

 

이번 생의 내 모든 길이 초행이다

내 삶이 서툰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수많은 생을 거쳐 왔다고들 말하기도 하지만

그건 다른 생의 다른 길이었을 테니

이번 생의 여기 이 길은

완연한 그 처음이다

초행길이 낯섦이 때로는 불안하기도 하지만

처음 가보는 낯선 길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사슴과 발길을 더욱 설레게 한다

익숙하지 않다는 것은

길들여지지 않았다는 것

초행길의 서툰 발걸음으로

남은 날들을 간다

첫 걸음, 첫 경험, 그 첫 설렘의 길들지 않는 몸짓으로

길이 다하거나

걸음이 다할 때까지

 

우선 멈추어

  -2021년 새해 서시序詩

 

 지금은 멈추어야 할 때,

 멈추어 서서

 돌아보고 내다보아야 할 때

 

 잘못된 길로

 불타고 무너지는 것들을

 온 사방 죽어가고 신음하는 것들을

 

 이제는 가는 길 바꾸어야 할 때,

 이 길은 함께 사는 길이 아니었으니

 이대로는 살아남을 수 없으니

 

 생명의 그 길로 다시 돌아가

 살아나야 할 때

 다시 살려야 할 때

 

 한 숨의 공기를

 한 모금의 물을

 한 줌의 흙, 한 그릇의 밥을

 

 한 포기의 풀과 한 그루의 나무와 한 송이의 꽃과 한 마리의 꿀벌과 한 마리의 지렁이와 그리고 병들고 죽어가는 숱한 그 한 목숨들을

 

 나와 너 우리의 목숨, 여기에 이 땅에 이 지구에 살아갈,

 살아가야 할 사랑하는 이들의 그 한 목숨들을

 

 의지해 있는 목숨

 어느 한 목숨 내치고는 살아갈 수 없으니

 

 서로 살림으로 함께 사는 길

 모심으로 꽃 피어나는 그 생명의 길로

 남은 걸음

 그 길로 다만 오롯해야 할 때

 

 지금은 다시 태어나야 할 때,

 인간이란 오랜 그 탈을 벗고

 대지의 생명, 그 지구 어머니의 자식으로 하늘 다시 열어야 할 때

 

 

                         * 계간 산림문학2021년 봄호(통권41), 녹색문학상 수상자 특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