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슬픔은
내 슬픔은
파도로 출렁이는 바다 같네
작은 바람에도 물결이 이네.
내 눈물은
동이에 가득 담긴 물과 같네
조금만 흔들려도 쏟아지네.
♧ 그 너머
너는 그 너머에 있다
눈에 보이는 자태 너머
귀로 들리는 소리 너머
손이 가닿는 촉각 그 너머에
만질 수는 없지만 느껴지는
네가 있다
꽃이 피고 지는 것 너머
빛과 그림자로 지어진 형상 그 너머
드러나 있는 나로서는 가 닿을 수 없는
가깝고 먼 그 너머에
언제나 어여한 네가 있다
한 번도 헤어진 적이 없지만
여태 뜨겁게 안아보지 못한
반갑고 그리운 네가 있다
너는 그 너머에 있다
빈 배로만 가닿을 수 있는
그 너머에
♧ 초행
이번 생의 내 모든 길이 초행이다
내 삶이 서툰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수많은 생을 거쳐 왔다고들 말하기도 하지만
그건 다른 생의 다른 길이었을 테니
이번 생의 여기 이 길은
완연한 그 처음이다
초행길이 낯섦이 때로는 불안하기도 하지만
처음 가보는 낯선 길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사슴과 발길을 더욱 설레게 한다
익숙하지 않다는 것은
길들여지지 않았다는 것
초행길의 서툰 발걸음으로
남은 날들을 간다
첫 걸음, 첫 경험, 그 첫 설렘의 길들지 않는 몸짓으로
길이 다하거나
걸음이 다할 때까지
♧ 지止․우선 멈추어
-2021년 새해 서시序詩
지금은 멈추어야 할 때,
멈추어 서서
돌아보고 내다보아야 할 때
잘못된 길로
불타고 무너지는 것들을
온 사방 죽어가고 신음하는 것들을
이제는 가는 길 바꾸어야 할 때,
이 길은 함께 사는 길이 아니었으니
이대로는 살아남을 수 없으니
생명의 그 길로 다시 돌아가
살아나야 할 때
다시 살려야 할 때
한 숨의 공기를
한 모금의 물을
한 줌의 흙, 한 그릇의 밥을
한 포기의 풀과 한 그루의 나무와 한 송이의 꽃과 한 마리의 꿀벌과 한 마리의 지렁이와 그리고 병들고 죽어가는 숱한 그 한 목숨들을
나와 너 우리의 목숨, 여기에 이 땅에 이 지구에 살아갈,
살아가야 할 사랑하는 이들의 그 한 목숨들을
의지해 있는 목숨
어느 한 목숨 내치고는 살아갈 수 없으니
서로 살림으로 함께 사는 길
모심으로 꽃 피어나는 그 생명의 길로
남은 걸음
그 길로 다만 오롯해야 할 때
지금은 다시 태어나야 할 때,
인간이란 오랜 그 탈을 벗고
대지의 생명, 그 지구 어머니의 자식으로 하늘 다시 열어야 할 때
* 계간 『산림문학』2021년 봄호(통권41호), 녹색문학상 수상자 특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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