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계간 '제주작가' 2021년 봄호의 시조

김창집 2021. 4. 20. 10:28

 

외로운 개츠비처럼* - 김연미

 

가파도 등대 불빛

그녀의 눈빛 같다

 

이중 화산 벼랑에서 바다 쪽으로 매달린

오래된 소나무 가지 실루엣만 남을 때

 

사계의 불빛들이

파티를 준비한 밤

 

송악산 둘레길로 시월처럼 오는 남자

섬의 끝 손을 내밀어 그리움을 만진다

 

단 하나의 사랑은

이생의 모든 목적

 

수만 년 어둠을 역광으로 드리우다

오늘쯤 불을 밝히고 나를 드러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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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차용.

 

아몬드 블라썸 - 김영란

 

너에게 주고 싶다

송이송이 빛나는 꿈

그 푸른 눈망울이

뿜어내는 호기심

천 개의 눈을 열고서

이 봄 모두 가지렴

 

겹겹의 꽃잎들

스치고 지나가는

나무의 탄성들에

귀 기울여 보렴

너에게 다 주고 싶다

찬란한 그 사랑

 

사라봉 까치 - 오영호

 

  흐린 맘 닦고 싶어

  찾아간 사라봉 숲

 

  소나무 우듬지에 까치떼 앉아 있다 나의 자손들아 내말 명심하기 바란다 우리의 선조 오십 세 작()1989년 육지에서 체포되어 A비행기를 타고 왔다 박수를 받으며 이곳 사라봉에 둥지를 틀었다. 앞뒤도 안 보고 똘똘 뭉쳐 오로지 자손을 번성시켜 마라도까지 점령한 지 오래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길조에서 흉조로 번해버렸다 오늘도 엽사들은 우리를 찾아다니고 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흩어져야 살아남는다 알겠는가?” 원로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산아제한은 안 된다고 투덜대다가

 

  아무튼

  너무 까불어댔어

  남이야 죽든 말든

 

풀각시 이애자

 

청상의 어머니는 밤낮 없는 삯바느질로 외할망 손에 크던 콩알만한 오누이 쌍무덤 상석에 앉아 넌 어멍 난 아방

 

아버지 빈자리는 한 살 많은 누이가 겨를 없는 어머니의 자리는 동생이 온전히 가족을 이룬 난 아방 넌 어멍

 

외면했던 날, 뒤에 오는 장영춘

 

 

꽃이 진 후에 느닷없는 꽃은 또 피어

 

한겨울 오름 등성이 발갛게 얼린 철쭉

 

선홍빛 시간을 녹일 햇살 한 줌 받는다

 

 

포트 홀 조한일

 

가끔은 일어나지

알면서도 속는 일

 

빤히 쳐다보고도

그럴 줄 알면서도

 

어느새

불나방 되어

뛰어드는 당신이란 덫

 

 

                                        * 시조 : 계간 제주작가2021년 봄호(통권 72)에서

                                                         * 사진 : 남방바람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