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로운 개츠비처럼* - 김연미
가파도 등대 불빛
그녀의 눈빛 같다
이중 화산 벼랑에서 바다 쪽으로 매달린
오래된 소나무 가지 실루엣만 남을 때
사계의 불빛들이
파티를 준비한 밤
송악산 둘레길로 시월처럼 오는 남자
섬의 끝 손을 내밀어 그리움을 만진다
단 하나의 사랑은
이생의 모든 목적
수만 년 어둠을 역광으로 드리우다
오늘쯤 불을 밝히고 나를 드러내고 싶다
---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차용.
♧ 아몬드 블라썸 - 김영란
너에게 주고 싶다
송이송이 빛나는 꿈
그 푸른 눈망울이
뿜어내는 호기심
천 개의 눈을 열고서
이 봄 모두 가지렴
겹겹의 꽃잎들
스치고 지나가는
나무의 탄성들에
귀 기울여 보렴
너에게 다 주고 싶다
찬란한 그 사랑
♧ 사라봉 까치 - 오영호
흐린 맘 닦고 싶어
찾아간 사라봉 숲
소나무 우듬지에 까치떼 앉아 있다 “나의 자손들아 내말 명심하기 바란다 우리의 선조 오십 세 작(鵲)은 1989년 육지에서 체포되어 A비행기를 타고 왔다 박수를 받으며 이곳 사라봉에 둥지를 틀었다. 앞뒤도 안 보고 똘똘 뭉쳐 오로지 자손을 번성시켜 마라도까지 점령한 지 오래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길조에서 흉조로 번해버렸다 오늘도 엽사들은 우리를 찾아다니고 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흩어져야 살아남는다 알겠는가?” 원로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산아제한은 안 된다고 투덜대다가
아무튼
너무 까불어댔어
남이야 죽든 말든
♧ 풀각시 – 이애자
청상의 어머니는 밤낮 없는 삯바느질로 외할망 손에 크던 콩알만한 오누이 쌍무덤 상석에 앉아 넌 어멍 난 아방
아버지 빈자리는 한 살 많은 누이가 겨를 없는 어머니의 자리는 동생이 온전히 가족을 이룬 난 아방 넌 어멍
♧ 외면했던 날, 뒤에 오는 – 장영춘
꽃이 진 후에 느닷없는 꽃은 또 피어
한겨울 오름 등성이 발갛게 얼린 철쭉
선홍빛 시간을 녹일 햇살 한 줌 받는다
♧ 포트 홀 – 조한일
가끔은 일어나지
알면서도 속는 일
빤히 쳐다보고도
그럴 줄 알면서도
어느새
불나방 되어
뛰어드는 당신이란 덫
* 시조 : 계간 『제주작가』2021년 봄호(통권 72호)에서
* 사진 : 남방바람꽃
'아름다운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권경업 시 '봄이 오는 지리산' 외 5편 (0) | 2021.04.25 |
---|---|
洪海里 시 속의 봄꽃 (0) | 2021.04.24 |
'우리詩' 2021년 4월호의 시(2) (0) | 2021.04.08 |
월간 '우리詩' 2021년 4월호의 시(1) (0) | 2021.04.04 |
'산림문학' 2021년 봄호의 시 (0) | 2021.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