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어버이날에 보내는 시와 꽃

김창집 2021. 5. 8. 12:53

어버이날에 - 제산 김 대식

 

매년 해마다 어버이날은 오는 데

나는 무엇 하나

부모님께 잘한 것이 없어

죄송하기만 하다.

살아계실 때

조금이나마 잘해드렸더라면

이렇게 마음 아프진 않으련만

가슴에 못 박을 심한 말만 했던

나 자신이 지금에 와 너무도 부끄럽다.

유난히도 잔병치레가 많았던 나의 어린 시절

어머니 등에 업혀 의원 집을 많이도 드나들었다.

밤새워 배 주무르시는 어머니 손은

어느 의사보다도 잘 듣는 약손이었다.

어머니 손잡고 길을 가다 어머니 손 놓치면

세상을 다 놓친 것 같아

그만 땅에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어머니, 못된 자식에게도

그리 사랑으로 주시기만 했던 어머니

나의 어머니

참 보고 싶은 나의 어머니

오늘은 무덤에라도 가서 울고 싶다.

 

아버지의 손 - 하영순

 

언젠가 아이들 피아노 선생님이

윗대에 예술 하신분이 있었느냐고 물어보던 말이 생각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그리고도 참 오랜 세월이 흘렀다

 

어버이날 나는 어미의 어미가 되어도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아버지! 아버지의 직업은 40년대 대목이었다. 지금 말하는 목수

산에 나무가 대들보가 되고 기둥이 되기까지 수작업을 해야 했던 시절

내가 살던 인근뿐 아니라 먼 곳까지

큼직큼직한 제각 누각 할 것 없이 아버지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늦은 밤 집에 오시면

날카로운 칼로 손바닥에 굳은살을 깎아내며 피를 흘리는 것을 보았다

그 당시는 별 생각 없이 보았는데

왜 이 느지막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벅차 몇날 며칠 전신이 저려

참다못해 기억을 더듬어본다.

 

지금도 가끔 문화재를 보면 못을 치지 않고 지은 집을 본다.

아버지의 공법이 그리하셨다

자구로 삐지고 대패로 밀고 끌로 구멍을 파서 끼워 놓는 공법

큰 집이 완성되기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일을 하면서 그 많은 굳은살이 생겼구나

하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되는지

예전에 어른들이 하는 소리. 관속에 들기 전에 철들겠느냐 하는 소리가

나를 두고 하던 소리인 것만 같다. 나 이제야 철이 들어 아버지를 생각하다니

지금 호화스럽게 자란 자식들에게 부모의 고생을 알아 달라고 하기엔

내 자신부터가 이렇게 모자라는데

어찌 자식에게 보모의 삶을 이해해 달라고 말 할 수 있단 말인가

 

시대를 잘못 타고난 예술인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못하는 일이 어디 있느냐고

아버지는 그러하셨다 눈으로 본 것 뿐 아니라 머리가 시키면 손으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예술인이었다.

 

일제 치하에 일본 선생님이

아버지의 명석한 두뇌에 감탄하고 일본 가서 공부 시키겠다고 하던 것을

노부모를 두고 떠날 수 없어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살집을 지은 것이 계기가 되어

대목이 되었다는 아버지

그 때 일본 가서 공부를 했더라면 예술가가 되었으리란 생각을 하면서

피아노 선생님께

윗대에 예술인이 없었다고 한 말이 아버지께 죄송한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하신일이 바로 예술인 것을 어버이날에 즈음하여

죄송한 이 글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바치고 싶다.

 

불효 여식 올림

 

불효 - 강은령

 

어버이날이 내일로 다가왔다.

아직도 빈손으로 가야 오히려 부모님 맘 편하실 터이니

무얼 해드려야 하는지 마음이 더 어지럽기만 하다.

십 년도 넘은 어느 가을, 상경하신 어머니와 부대찌게 집으로 들어갔다.

길을 걷다가 빈혈 증세도 보였으면서

굳이 어머니만 혼자서 드시라고 고집을 부렸다.

배가 부르다고도 입맛이 없다고도 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안 먹겠다고 결사적이었다.

속이 상하신 어머니는 결국 다 드시지도 못하고 눈물을 흘리셨다.

단지 내 몫으로 지불될 음식값이 아까와서였는데,

어떤 선물로 그날 뜯겨져 나간 어머니의 가슴을 메워드릴 수 있을까

 

친정 가는 길 - 김경숙

 

보물을 찾으러 가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마음은 벌써 우슬재를 넘어

친정 집 대문을 들어서고 있다

눈앞에 전개되는 정겨운 오월의 풍경

어줍은 표현으로 감당하기 벅차다

 

오전 11시 휴대폰이 울린다

오메 어디쯤 오고 있냐 머나 먼 길 힘들 텐데 어버이날 안 오면

어쩐다고 일부러 시간 내서 온다냐 나야 딸들 오니께 좋기는

하다마는 어쩌든지 운전조심하고 천천히 오니라

 

오후 1230분 전화를 받으신다

어디냐 겁나 시장하것다 니그들 오면 같이 묵을라고

밥 안 묵고 기다리고 있다 읍내 장날 가서 좋아한 것 사다

국도 끓이고 낙지 초 무침하고 게장도 만들어 놓고 맛나게

점심 준비 해 놨응께 조심해서 오니라 오냐 오냐

뚜 뚜 뚜……

 

동네 어귀 노송 한 그루,

버팀목에 의지한 채 흔들리며 서 있다

고향 들녘 보리밭, 눈 안에 잠긴다

 

쇠고기 한 근 - 윤용기

 

  어언 2년여의 세월을 삼켜 버렸습니다.

  당신이 떠나 간지가 말입니다.

  99년 가을 어느 날 딸네 집이며 너네 집에 꼭 한번 다녀가고 싶다던 팔순의 노모를 모시고 나는 봉천동 골목길 어귀에 사는 둘째 누님 댁에 당신을 모시고 갔다.

  일 주일동안 있으면서 "지겹다, 나 내려 갈란다" 하시며 더 모시고 싶어하던 누이와 당신과의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하는 모습이 눈에 선 합니다.

  아들 네 집에서도 일주일 머물다 당신을 대구에까지 모셔다 드리면서 서부 주차장에 당신을 놓아두고....

  평소에 피부병이 있어 늘 건지러워 낫지 않는 그 고얀 놈 때문에 돼지고기, 닭고기는 입에도 대지 못하시던 당신 그래서 쇠고기가 아니면 잡수지를 못하시던 당신이기에 나는 정육점에 들러 부드러운 쇠고기 한 근과 평소 좋아하시던 갈치 한 마리를 사서 당신의 보자기에 싸 넣어 드리고 우곡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보지도 않고 수원으로 오기 급해 발길을 돌린 자신이 늘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것이 당신에게 사 드린 마지막 쇠고기 한 근

  지금도 가슴이 메입니다.

  또다시 어버이날을 맞이하고 당신이 그리워 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어 혼난 적도 있습니다.

  당신의 모습이 점 점 잊혀지는 까닭은 내 사랑이 식은 까닭이겠지요

  늘 당신을 생각할 때면 오늘도 밤하늘에 카시오페아 자리를 보며 당신의 영혼이라도 만날 수 있을까 매일 밤하늘 그 자리를 찾아 헤멥니다.

  어머니

  당신이 보고픈 밤입니다.

  당신이 그리워지는 밤입니다.

 

 

                                     * 사진 : 카네이션 대신 어제 찍은 작약 꽃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