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김정수 시 '별들도 슬프면 그림을 그린다' 외

김창집 2021. 5. 5. 09:21

별들도 슬프면 그림을 그린다

 

어둠은 그리움의 도화지

쏟아질 것 같은 눈물로

그립다는 말 대신

그림을 그린다

 

별들이 뿌리는 눈물

별이 된 동생의 슬픔을 달래려

가만히 옆에 와

함께 울어주는

 

먹먹한 어둠일 때

눈물을 흘리며

그림을 그리는

 

인생의 방파제

 

지나온 저 먼 길 가쁘게 살았구나

바다를 바라본다

방파제 끝에 서서

풍덩 빠지는 죽음 같은 삶

팔 뻗어 돌아오는 고깃배 품에 안고

하나씩 매어두면

꾸벅꾸벅 잠이 든다

 

끝까지 사랑한 사람

이름 부르며 바라본 그 끝

방파제 끝에 서면

잊었던 그 사람들

하나 둘

그리움이 뼈 속까지 아리다

다시는 보내는 일이 없어야지

아무도

 

지갑이 돌아왔다

 

일년 만에 지갑이 돌아왔다

내용물은 다 빼앗기고

몸만 쭈굴쭈굴하게 돌아왔다

살만한 곳이 없었나

돈과 카드와 친구들 연락처

모두 빼앗기고

앙상한 모습이 되어

몸만 돌아왔다

다시 당신과 살아보겠다고

망신창이가 되어 나타난 거다

가득 채워 줄 거다

단단하게 뻣뻣한 카드로 주름을 펴 주고,

홀쭉한 몸을 두둑하게 돈으로 채워줄 거다

온몸을 깨끗이 닦아

매일매일 데리고 다닐 거다

 

, 따뜻하다

 

목티에 조끼까지 입었다

속옷 위에 목티

목티 위에 조끼

다음은 외투였다

밖에서 보면

외투가 조끼를 감싸고

안에서 보면

속옷이 외투를 감쌌다

속옷을 잘 펴려고

손을 집어넣는 순간

, 따뜻하다

내 몸이 외투까지 체온으로 덥혔구나

 

외투가 바람을 막고,

목티가 체온 지키며

서로가 위하고 감싸주며

 

더불어 산다는 것

따뜻하다

 

바닷게

 

굴삭기 같은

바닷게가 기어간다

옆으로 옆으로

게거품을 뽀글거리며

동료들과 함께

집게발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높은 데를 낮추고

거친 바닥을 평평하게 다지도록

물러서지 않은 게들이

투지

 

위험이 닥치면

집게발을 뚝 잘라버린다

지켜야 할 것들을 위해

자존심쯤이야 이런 아픔쯤이야

참아야 하는 것

 

나는 언제

내가 지켜내야 할

가족을 위해

옆으로 기거나

팔다리를 잘라내듯

희생을 해 봤는지

헤아려 보는데

 

아기, 아기

 

희생자 묘비명이

아기 아기

이름을 짓지 못한

이 다른 아기들

이름이 같은 아기들

 

묘비명이

아기 아기

엄마 품에서 잠들었다고 썼다

엄마 이름 옆에

아기 아기라 썼다

 

교통사고도 아니고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싸운 것도 아닌

누구를 미워해 본 적이 없는

그래서 엄마랑 같이 죽은

아기

아기

 

 

                                     * 김정수 시집 따라비로 오라(시와 실천, 2019)에서

                                                          * 사진 : 아카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