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해외 나들이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 (4)

김창집 2021. 5. 22. 11:14

모네의 정원에 있는 전시실은 미술작품전시관이라기보다는

그냥 사람이 살던 방과 마루와 복도 같은 곳에

잘 알려진 그림이 아닌

습작이거나 갖고 있던 그림들을

질서 없이 대충 걸어 놓은 곳이다.

전부가 모네의 작품이랄 수도 없고

물고기 같은 것은 중국이나 일본 그림도 있다.

 

그리고 매점에는 엽서와 간단한 복사 그림,

수정 제품, 그리고 기념품 정도다

화집은 비싼 것만 있었다.

 

모네의 화집에 나오는 그림들은

세계로 퍼져 거대한 미술관에 전시되거나

개인 소장품들이다.

그래서 그 그림들을 그냥 여기에 옮기지 못하고

수련이 나오는 그림의 부분만 올린다.

 

모네 씨의 수련 - 김정란

 

나는 언제나 물가에 있다

영혼은 친수성(親水性)이지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려면,

우선 가늘게 눈을 뜨는 것부터

최초의 순수한 시선을 확보하는 것부터

시작할 것

 

그 다음엔

투명한 베일처럼 펼쳐지는 신비와

영혼이라고 불리는 감미로운 안개

 

모든 연금술사들의 애무하는

탐미적인 쾌락의 붓 같은 시선을

 

사물에 단 한번 멋지게 도달하기 위해

존재의 모든 골목길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는

그들의 사팔뜨기 영혼을 부를 것

 

그리하여 이윽고

청명한 대낮을 향해 일어서는

물의 무한(無限)으로 다가갈 것

모든 것이기도 하고 전혀 부재이기도 한 물

 

수련은

오랜 시선의 애무를 받은 물속에서

어느 새벽 홀로 활짝 피어난다

 

난 수련이 벽이기라도 한 듯

기대고 싶어 그 작은 꽃의 고적함과

미세함에 그 위태한 연약함에 기대고 싶어

 

언제든 이윽고 물밑으로

가라앉고 싶어

깜깜한, 아주 보드라운

회귀의 물 밑으로

 

오월, 아이리스 - 김귀녀

 

우리 집 마당에 아이리스가 절정이다

화려한 꽃술을 하늘에 드러내고

뽐내고 있다

나는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고

수련과 아이리스를 사랑한다

빛을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아이리스를

화폭에 담아 세상에 남긴

모네처럼

오월은 아이리스의 계절

우리 집 마당에 색색으로 피었다

나의 인생의 절정도 오월이리라

첫 출산을 하고 아이의 걸음마를 보던 때

오월처럼

그 때가 오월이리라

 

햇빛 속으로 - 진경옥

   -효정에게

 

정선 간다

꽃피고 새우는

신파조의 가슴 안고

수런수런 3월 숲 잎 피기도 엉성한 때

소금강 거스르며 절경에 까무러치며

 

비가 올려나 눈이 올려나

흥얼흥얼 목젖 타고 뱃길 가는 아리랑

첩첩 산 깊은 계곡

길 찾기도 어렵지만 꿈꾸는 짓 무모해

둘러 업고 정선 간다

 

퐁텐블로* 머리 위에

클로드 모네 캔버스에

쏟아지던 햇빛 따라

구비 구비 아우라지

빗금 그으며 정선 간다

인상파 화풍으로 연신 까무러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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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텐블로 : 파리 근교, 파리시 보다 더 큰 숲(왕족들의 사냥 터)

퐁텐블로에 내리는 햇빛에 영향받아 인상파 화풍이 일어남.

 

엽서 - 성숙옥

 

단풍은 산을 칠해 가을을 그리고 있다

바람과 비와 먹구름이 섞인 선명한 색,

모네의 그림 속 같다

붉고 노란 잎사귀들

무용수처럼 턴을 하며

내 어깨까지 별을 그려준다

 

나도 이런 황홀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나눠 줄 때가 있을까

붉은 엽서에 적는 한 줄 소망

 

나의 끝 무렵도 저 잎만 같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