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십리사설 – 정인수
서불徐市님 저녁놀 헤치며 노 저어간 포구였네.
삼신산 불로초 캐러 왔다가 그만 산수에 취하여 정방 석벽에 <서불과처徐市過處> 넉 자만 새겨놓고 넋을 잃고 떠났다네. 아무렴 그렇지 몰라서 물어? 여기가 어디라고… 설문대할망 희멀건 몸 벗어 실 한 오라기 안 걸치고 벌렁 나자빠져, 그 아릿다운 계곡과 구릉과 그늘진 숲, 천향의 과일들을 스스럼없이 빚어 놓았지. 파아란 하늘이 떨어져 괸 천지연 못물 위로, 뜨거운 합환合歡으로 자지러지는 폭포, 지상의 마지막 정력으로 치솟은 남근의 고석포孤石浦, 외돌 그 길게 드리워진 외로운 그림자 저쪽으로 열리는 유성음의 아침바다에는 옛 사연 모르는 주낙배 붕, 붕, 붕, 붕 줄을 잇고, 칠십리 창공을 차며 나는 갈매기들 둥우리 트는 법섬, 문섬, 섶섬, 새섬들이 심장을 깔고 앉아 제 추억을 말끔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아침 태양에서 캐낸 등불 바자니는 소복의 비바리들 고운 눈매 아롱다롱 매달려 밀감꽃이 하야니 피는 걸…
그 아랠 은하빛 꽃떨기로 흐는히 젖는 개울물.
♧ 콩잎쌈
선잠을 깬 이 아침
콩잎 쌈이 먹고 싶다.
어릴 때 할머니 따라 조팥 검질* 매러 가서, 땡볕에 이마가 짜개져도 점심 기다리며 잘도 버텼지. 할머니께선 어느새 옆 밭으로 가 주섬주섬 콩잎을 한 움큼 따 오셨지. 예닐곱 장을 손바닥 위에 포개 펴서 보리밥 한 숟갈 듬뿍 퍼 놓고 된장 바르고 꼬깃꼬깃 쌈을 싸서 한 입에 잡숫던 모습…. 나도 따라 먹으면서 풀 냄새 비릿하여 상을 찌푸리면 된장 발라 주시면서,
“에이구 불상ᄒᆞᆫ 거. 어멍**도 어시***…”
아아! 콩잎에 된장, 그 비릿하면서 코시롱ᄒᆞᆫ**** 맛!
할머니께선 평생을 콩잎에 된장 바르듯, 손바닥만 한 예닐곱 장의 가난을 꼬깃꼬깃 펴시다가 콩밭에 묻히셨지.
이 아침 콩잎 쌈이 먹고 싶다.
코시롱ᄒᆞᆫ 된장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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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팥 검질 : ‘조밭에 김매는 일’의 제주어.
**어멍 : ‘어머니’의 제주어.
***어시 : ‘없이’의 제주어.
****코시롱ᄒᆞᆫ : ‘고소한’의 제주어.
* 정인수 『섬과 섬 사이』(고요아침, 2017)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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