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윤병주 시 '생의 그림자' 외 3편

김창집 2021. 6. 3. 10:07

생의 그림자

 

한여름 사막의 건기에 낙타 한 무리가

정오의 햇살을 건너가고 있다

멀리 서 있는 구름 몇 층이

짐을 얹고 가는 낙타의 생을 위로해 준다

 

태양과 사막의 상인들은 서로의 열기로

같이 건너야 하는 것이 숙명일지 모른다

 

짐을 얹고 사막을 넘어서야 살 수 있다

노동하다 버려진 뼈들을 밟고 살아야 하는 것이

낙타와 상인들의 운명일지 모른다

 

사막의 길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멀리 선 나무 몇 그루 아래

사람들의 광기처럼 사막을 지키고 있다

 

참 예의 없는 현실의 노동들

서로의 그림자를 밟고 살다가 짐을 얹을 힘이 없으면

빈 병처럼 버려지는 것이 낙타의 일생일지도 모른다

 

어느 시인의 부음이 문자로 왔다

사회를 비판하면서 쓴 그의 시는

얼마에 팔리게 될까

 

어느 여자 시인

 

그녀는 바다가 보이는 집

가난한 목수의 딸로 태어났다

노동하는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고

불의의 노동현장에서 버려진 남자의 아들을 낳고

홀로 키웠다

감히 평하고 싶어 하는

시인들은 많지 않다

그의 시는 늘 구름처럼 혁명을 따라다녔다

 

수족관 안의 게

 

수조관 안, 깊은 수심과 맞바꾼

화석 같은 몸과 힘센 발의 움직이며 지나간다

한때 깊은 수심 냉수대를 지배하던,

잔고기들의 생을 위협하던 힘 센 집게발

길흉을 지켜주던 몸속의 촉감들도

무용지물처럼 퍼석하게

살과 몸무게를 솎아내고 있다

갇혀버린 생을 바라보는 관심들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자유로운 바다의 생으로 살고 싶어 정신을 가다듬는다

몸속 자양분을 담보 잡힌 수족관에서

낡아가는 인대를 껍질 속에 숨기며

지상의 쓸쓸한 관심과 맞바꾸고 있다

 

물고기자리

 

겨울이 가고 봄이 오기 전

나는 동쪽 바다 구름이 있는

슬픈 별자리를 지나야 한다

 

어느 초저녁 술집 이야기와

성난 파도 소리를 들어야 한다

출입문의 위치와 수선이 필요한 낡은 배들의

지나온 바다의 수신호를 살펴야 한다

동쪽 항구에서 되돌아올 수 없는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왜 빛나는 것들은

어둠이 되고서야 단단해지고

바닷가 고기들의 수심자리가 되는 걸까

 

멀어진 고향집 어머니의 감나무 잎을 향해

돌아갈 길에 부를 희망의 노래도 준비해 둬야겠다

 

나는 슬픈 뱃길처럼 너무 멀리 와 있다

아주 오래된 별처럼

바닷가 사람들의 슬픈 별을 관습으로 보아야 한다

 

봄 바다가 거인처럼 밤에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