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한희정의 여름 꽃 시조

김창집 2021. 6. 19. 19:41

꽃치자

 

헤집던 엄마 젖가슴

이제 알 것

같아요

 

눈 감고 입을 다물면

그 향기가

섧네요

 

미풍에 몸살을 앓던

유월 밤이

아파요

 

인동꽃

 

신세대

꽃 시위 앞엔

하늘도 목이 타는지

 

꽃잎에 주둥일 박고

단물 쪽쪽 빠는 햇살

 

열여섯 곱슬머리가

초록 담장

허문다

 

수련

 

하늘은 닫혔어도

 

꽃들은 피고 있었네

 

가발 쓴 무희들의 하얀 발목이 비치면서

 

장맛비 꽃들의 음표가 통통 튀어 오를 때,

 

 

상반신 다 드러낸 백련 한 송이가

 

하늘 계단 따라 그림자 내려선 곳

 

사르르 바람이 일어

 

꽃잎들을 헹군다

 

 

목탁은 절에서 치고

 

파문은 연못에 이네

 

물 위에 오체투지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이제 막 꺼낸 날개를 다시 물에 담근다

 

협죽도

 

이쯤에서 이별이라니

이쯤에서 이별이라니,

 

연일 불볕더위 공항길이 낮술에 타고

 

끝끝내 독설을 참으며

꽃이 떼로

붉어라

 

 

한세상 다 안고도

 

숭덩숭덩 살 것 같은

 

하가마을 해수보살

 

바라춤 추시다가

 

또르르,

 

고개를 숙여

 

하늘의

 

 

받고 있네

 

상사화

 

그땐 벼랑길도

함께 갈 수 있다 그랬지

 

비구니 승방 앞뜰에

화두처럼

다가온

 

잎 두고 저만 피어서

어떡하잔

말이냐

 

띠동갑 분꽃에게

 

온종일 자다 깨다 해질녘에 일어나는

요즘 산다는 게 외톨이 같아 서럽다는

눈이 큰 도우미 그녀 립스틱을 바꿨네.

 

오십 년대 신파극 조연 역의 각본을 들고

시드는 가을입구 꽃들이랑 함께 앉아

툭 하면 꽃잎을 따서 흡연 시늉하는 그녀.

 

한 송이 분꽃에도 분꽃만한 그리움 있어

야간 출근부가 세월처럼 닳아진 지금

맞벌이 산 너머 산에 꽃은 다시 피어서,

 

까만 손바닥에 환약 몇 알 쥐어 주던

아이 셋 그 나이에도 엄마 몹시 그리워

지난 밤 노래방에서 눈물 꽃을 피웠대.

 

 

                                       * 한희정 시선집 도시의 가을 한 잎(고요아침, 201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