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정드리문학 제9집의 시조(3)

김창집 2021. 6. 18. 23:02

애월 - 오승철

   --장한철 표해록에 들다

 

납읍천 도끼돌에 꿈이라도 별렀을까

17701225, 못 가둔 그 꿈 하나

기어이 조천바다에 돛배 한 척 띄운다

 

믿을 걸 믿어야지 뱃길을 믿으라고?

소안도도 유구열도도 들락들락 들락키면

몇 명 또 바다에 묻고 만가 없이 가는 눈발

 

파도가 싣고 왔지, 청산도에 왜 왔겠나

꿈속에서 물 한 모금 건네던 무녀의 딸

하룻밤 동백 한 송이 피워놓고 돌아선다

 

그리움도 장원급제도 수평선 너머의 일

나도 야성의 바다, 그 꿈 포기 못했는데

단애를 퉁퉁 치면서 애월에 달이 뜬다

 

두말치물 - 문순자

 

아마 작명가의 작명은 아니지 싶다

퍼내고 또 퍼내도 그만치 차오른다

조천포 발치에 와서

썰물에나 차오른다

 

아침저녁 유배객들 절을 하는 연북정

무슨 죄목으로 여기까지 내몰렸을까

그 모습 훔쳐보려고

물 길러 온 순덕이

 

몇 번을 길었다 붓고 길었다 다시 붓고

말 한 번 못 걸어도 사랑은 사랑이다

물허벅 지는 둥 마는 둥

불배나 켜는 바다

 

백중날 - 조영자

 

단 한 치 오차 없이 백발백중 앉았네

원당봉 소나무 숲 곱게 받든 그 가지

 

허기진

안부를 끌고

백중달이 앉았네.

 

달아달아 백중달아 기어코 따라온 달아

쉰일곱 해 세경살이, 다 못 한 일 남았는지

 

이 세상

마지막 노동

양식장에 뜬 달아.

 

하도리 순비기꽃 - 김신자

 

하도리 마을회관 흘러나오는 그 노래

나인 듯 나 아닌 듯 체온으로 녹아들고

구십도 꺾인 허리를 땅속에서 펴신 어머니

 

어떡하다 여기에 와 바닷가에 앉았나요

파도도 어머니와 아주 친한 걸 보니

어머닌 저 세상에서 꽃몸이 되었군요

 

오늘은 어머니가 이 세상을 밝혔네

바닷가에 핀 채로 빙긋이 웃으시네

팔 벌려 날 안아주듯 아기바람도 품네

 

새벽녘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던 그 소리

나에게 깨지 말라고 살살살 걷던 기척

어머니, 다시 한 번만 그렇게 해 주세요

 

벌통생각 7 강현수

 

눈발인지 벌떼인지

허공에 윙윙댄다

벌통도 아버지도

모두 떠난 돈내코

아버지 어디 아파요?

괜찮다며 오는 눈

 

하늘 경전 - 김영순

  --한곬 현병찬 서실, 먹글이 있는 집

 

천장 붓글씨들이 여름밤 별자리 같다

남두육성 견우직녀성 새로 생긴 어머니 무덤

서귀포 남녘 하늘에 꼬리별이 또 진다

 

어느 문하생이 못 다 쓴 고백일까

스치면 인연이요 스며들면 사랑이라

누구의 말씀이신가

별 스치는 이 밤에

 

개발괴발 살아온 길, 내 길도 파지(破紙)일까

흠들은 흠들끼리 저렇게 어우러져

획 하나 점 하나 놓쳐도

비로소 걸작이 된다

 

모르핀 그 아름다운 중독 - 이명숙

 

눈 뜨면 복용하는 그대라는 비타민 암것도 모르면서 그대를 주사하며

창밖의 시간을 위해 안쪽 시간 견디네

 

밑지는 장사라며 거짓말을 하면서 서로 다른 유전자 거뜬히 조율하며

모르면 모르는 대로 꽃 지우고 풀리네

 

봄을 상상하면서 스무고개 넘으며 봄날의 양염처럼 하늘을 애정하며

지상의 못다 푼 숙제 먼지처럼 날리네

 

 

                                       * 정드리문학제9내게도 한 방은 있다2021. 다층

                                                            * 사진 : 참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