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조한일 시집 '나를 서성이다' 발간

김창집 2021. 6. 16. 20:23

시인의 말

 

알 수 없는

삶의 보폭 사이

 

쉼표 같은 작은 시어들이

자꾸 밟힌다.

 

집어 들었다가 놓았다가

놓았다가 또 집어 들었다가

 

이게 다 뭐라고……

 

                    20216

                          조한일

 

물질일보

 

테왁을 붙들어야 물 밖이 이승이지

 

탯줄 탄 숨비소리 조간대 넘어오면

 

이고 온 망사리마다 주름지는 자맥질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해풍 맞은 노모 가슴엔

 

바다의 문장들이 절벽처럼 서 있다

 

오늘 자 물질일보를 물숨으로 넘긴다

 

외주外注

 

  시인아,

  혼자서 감당하려 하지 마라

 

  11월의 쓸쓸함도 목요일의 피곤함도 내게 맡겨주오 쳐낼 것 다 쳐내고 도로 갖다 주리니 기울어진 운동장을 비탈 같은 심장으로 수평기까지 갖다 대고 애써 일으켜 세우려 마라 불콰한 낯빛으로 폭우 그친 뒤 아침 햇살을 숨죽여 마셔보라 가시처럼 목에 걸려도 눈 딱 감고 삼켜보라 그러려니 삭혀왔던 적 곱씹으며 되뇌었던 적 없는 것처럼 하지도 마라

 

  당신의 시 한 구절에 죽고 사는 나도 있잖아

 

형광등을 갈며

 

세 평 남짓 안방에 불쑥 찾아온 침묵과

햇빛도 몸을 사려 소용없는 밤 열 시 반

빛 잃은 시각과 공간에서 넌 점점 야위어도

 

켜졌다 꺼졌다 하는 ON OFF의 갈림길에서

낮과 밤 그사이에서 눈 감았다 떴다 한 넌

기어코 살아 있음을 화들짝 보여줬어

 

새것이 으스대며 꿰차는 낯선 이곳

죽도록 밝아야 죽지 않는 삶이 있어

길고 긴 터널 지나며 눈이 부실 창백한 너

 

이 순간 수명 다한 널 누군가 밟고 가도

밝은 날 존재감 없이 숨죽여 살았어도

밤하늘 시리우스보다 더 빛나는 삶이었어

 

절제의 미

 

고샅길

철조망 안

말들이 머뭇댄다

 

오름을 내달리던

고려의

오랜 본능

 

검객이

칼집에 든 검을

빼다

도로

넣듯이

 

젓가락

 

밥상 위 국물 빼고 다 집어 올린다는

가위처럼 벌어져도 날카롭지 않으며

둘이서 한 몸짓하는 부부 닮은 젓가락

 

사는 게 서툴러서 비틀대어 속상할 땐

명이나물 찢듯이 삶은 감자 찌르듯이

칼처럼 살기도 하고 송곳처럼 살기도 하고

 

다랑쉬오름

 

단 한 번 끓어올라 지나온 만년 세월

그 흔적 붉은 송이 오름 곁을 못 떠나고

둥글고 아찔한 분화구 모습은 그대론데

 

한 쪽이 터져버린 말굽 같은 저 사랑도

질펀하게 쌓여버린 원추같은 그 사랑

도반듯한 이런 사랑을 질투하고 있는데

 

그 후론 두 번 다시 타오른 적 없었다는

화산섬 동쪽 땅에 지독히도 숨을 죽인

제왕의 뜨거운 사랑을 보고 있냐 말이다

 

 

                               *조한일 시집 나를 서성이다(시와 실천, 2021)에서

                                                     *사진 : 자귀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