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치자
헤집던 엄마 젖가슴
이제 알 것
같아요
눈 감고 입을 다물면
그 향기가
섧네요
미풍에 몸살을 앓던
유월 밤이
아파요
♧ 인동꽃
신세대
꽃 시위 앞엔
하늘도 목이 타는지
꽃잎에 주둥일 박고
단물 쪽쪽 빠는 햇살
열여섯 곱슬머리가
초록 담장
허문다
♧ 수련
하늘은 닫혔어도
꽃들은 피고 있었네
가발 쓴 무희들의 하얀 발목이 비치면서
장맛비 꽃들의 음표가 통통 튀어 오를 때,
상반신 다 드러낸 백련 한 송이가
하늘 계단 따라 그림자 내려선 곳
사르르 바람이 일어
꽃잎들을 헹군다
목탁은 절에서 치고
파문은 연못에 이네
물 위에 오체투지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이제 막 꺼낸 날개를 다시 물에 담근다
♧ 협죽도
이쯤에서 이별이라니
이쯤에서 이별이라니,
연일 불볕더위 공항길이 낮술에 타고
끝끝내 독설을 참으며
꽃이 떼로
붉어라
♧ 연
한세상 다 안고도
숭덩숭덩 살 것 같은
하가마을 해수보살
바라춤 추시다가
또르르,
고개를 숙여
하늘의
잔
받고 있네
♧ 상사화
그땐 벼랑길도
함께 갈 수 있다 그랬지
비구니 승방 앞뜰에
화두처럼
다가온
너
잎 두고 저만 피어서
어떡하잔
말이냐
♧ 띠동갑 분꽃에게
온종일 자다 깨다 해질녘에 일어나는
요즘 산다는 게 외톨이 같아 서럽다는
눈이 큰 도우미 그녀 립스틱을 바꿨네.
오십 년대 신파극 조연 역의 각본을 들고
시드는 가을입구 꽃들이랑 함께 앉아
툭 하면 꽃잎을 따서 흡연 시늉하는 그녀.
한 송이 분꽃에도 분꽃만한 그리움 있어
야간 출근부가 세월처럼 닳아진 지금
맞벌이 산 너머 산에 꽃은 다시 피어서,
까만 손바닥에 환약 몇 알 쥐어 주던
아이 셋 그 나이에도 엄마 몹시 그리워
지난 밤 노래방에서 눈물 꽃을 피웠대.
* 한희정 시선집 『도시의 가을 한 잎』(고요아침, 2017)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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