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윤병주 시 '소금 길에 대하여' 외 3편

김창집 2021. 6. 28. 00:07

소금 길에 대하여

 

바다의 수심을 기억할 수 없는 생선들은

짜디짠 태양을 지나온 소금에 몸이 채워진다

몸속에 해를 밀어 넣기 전엔

모든 생선은 물이거나 빛나는 순간을 가진 바다였다

 

햇살과 바람이 사라지기 전 청력을 잃은 생선들과

어판장 노인들은 거대한 해풍의 수온에

가파른 몸을 얻고 응축된 계절에 오른다

 

생선들은 오랫동안 햇살을 모아들인다

햇살을 찍어 누르면 조금씩 피어나는 소금의 흔적

노인의 시간은 그럴 때마다 라디오 소리처럼

소금물과 냉랭한 시선을 뿌려 주었고

바다를 기억하지 못하게 생선들의 귀에

소금을 덮어 주었다

 

항구에서 팔리는 것에 실패한 생선들은

다시 구름을 지나 소금의 간기 쪽에서

살을 저미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살 속에 고여 있는 태양의

희미한 소금이 되는 발자국뿐

간기를 먹고 화석처럼 되어가고 있는 일

저 갑판 위 생선들은 바다를 떠나온 풍경들

이제 더 먼 세상을 떠돌고 돌아와야 한다

 

구름의 실루엣 2

 

가장 낮은 바닥까지 가서

사랑이 지나간 줄도 모르고 웃음으로

서로를 보내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욕망을 품고 가는 것이 죄다

수천 가지 환상과 물거품이 꺼질 때까지

 

거짓 사랑을 덮어 줄 진실이 서로 필요했는지

바닥에 엎질러진 물처럼 혹은 착한 사람처럼

사랑을 증명할 숭고한 결말은 없고

불안한 과정만 남은 그런 관계

여전히 거품으로 가득한 욕망과

불행했던 시간을 소중한 날이라고 믿어본다

 

일그러진 별들이 어둠에 잠기고

수많은 비극이 우리 사이에 놓였는데도

단순한 세상 법으로는 인연이라고 한다

불길한 빛을 내며 일어나는 거품 같은 현상을

허허로운 환영에서 그대의 배후가 되어

결박을 풀지 못한 채 세월은 가고 있는데

 

구름처럼 높아진 그대 곁에 가기 위해서는

몇 상자의 슬픈 예감이 필요하다

밤하늘의 구름을 터트릴 압정들이

더는 참아내지 못하고 나처럼 일어서는데

부디 꿈이 건너간 거품 같은 낮이 아니기를

그대의 아픈 상처도 더는 덧나지 않기를

 

소년과 새

 

소년은 새들의 발목에 비상하는 줄을 팽팽하게 당기며

서로의 간격을 줄이고 있다

새가 줄을 풀고 날아갈 허공을 비상하고 돌아오는 동안

소년은 새를 날려 하늘을 얻는다

 

허공에 걸린 새들의 날개짓이 무명실처럼 팽팽해지면

새장으로 돌아온 새는 거칠게 숨을 고르며

다시 날아서 가야하는 방향으로 바람을 타는

새의 습성을 바꾸고 있다

 

소년은 새가 새장을 두고 간 것을 알고 있다

때론 불안한 비상과 착륙을 지켜보며

나무 아래서 기다리다 푸른 위궤양을 앓기도 했다

 

새는 점점 커지고 서로의 달라진 관심을 찾는 동안

새와 자신에게 연결된 줄을 당기곤 불안을 안심으로 바꾸곤 했다

가끔은 돌아오지 않는 새장을 확인하면서 날개 쪽 근육 안의 비표를 찾아

서로 다른 문명의 방향이

며칠 새장 안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을 소년은 알게 되었다

 

소년도 새도 이제는 서로가 의탁할 것이 별로 없다

소년은 기린처럼 자란 목으로

박하사탕 같은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

새는 새장에서 숨이 가빠지고 발목이 푸르러졌다

햇살은 꿈인 듯 서로의 간격을 곱씹어 주고 간다

사랑의 관습들이 까마득한 창공의 소문들이

지난 밤 불면의 등성이들이 심상치 않다

소년은 새를 키워 사랑을 얻었다

누군가 적어 놓은 금기된 단서를 찾는 동안

서로 깨뜨리지 않으면

조금의 간격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새장을 빠져나온 새의 날개는

허공의 틈바구니에 묶여 있고

소년은 문명의 슬픈 도시를 넘겨다보고 있다

 

어떤 사람 1

 

길이 열렸는데도 떠나지 못하는 한 사람을 위해

며칠 동안 서로 말을 하지 못하고

봄날 꽃 진 자리를 지우던 길

산등에 걸린 별들이 반짝이면

가슴에 오래도록 물들이던 그대 가던 길

차마 보지 못하고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사람

그 길로 가네

 

 

                      * 윤병주 시집 풋사과를 먹는 저녁(현대시학 시인선 060, 2020)에서

                                                         * 사진 : 함박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