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규중 시 '출근 버스에서 내리며' 외 5편

김창집 2021. 6. 29. 13:24

출근 버스에서 내리며

 

새벽 버스가

정류소 이름을 하나 하나 읽으며

아흔세 곳

마을 정류소를 들려

드디어 무릉리에 도착하였습니다

 

오늘 하루

유치원에서 중학교 3학년까지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122명 친구들과

눈 맞추고서

퇴근하자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상대방 이해하기

 

학교 운영에

문제 제기를 받았습니다

고민이 많았습니다

나의 진심을 이렇게 몰라줄까

내가 어느 과정에서 미흡했을까

더 깊고 깊어지는

고민의 끝에서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나보다 더 고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문제 제기한 사람입니다

 

초임 교사

 

학년 초 회식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성찰을 가르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서 깜짝 놀라게 하더니

 

중간 통지표에 시를 담아서

학부모에게 아이들의 성장 이야기를

멋있게 선물하더니

 

태풍이 몰아치던 날

이른 시간에 와서 교실을 살펴보고

아이들 한 명 한 명 궁금해 하는

 

한 기대되는 초임 교사

꺾이지 않게

 

공문

 

학교 교육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지만

교육청에서 내려온 공문

계획을 세우고 실적 보고하라는 공문

이럴 시간과 노력이면 학생 한 번

더 보살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공문을 묵살하고 싶지만

다음에 올 따가운 말

그래 잘 하는지 보자

학교의 자율성을 확보한다면서

공문을 묵살하고 있는데

자율성을 살려 얼마나 교육을 잘 하는지

이 따가운 시선을 이겨낼

내공이 약해서

결국 수용하고 만다

 

늦은 퇴근

 

도서관 학부모도 가고

골프교실 마을 주민도 가고

마지막으로 밴드동아리 학부모도 가고

학교 건물에 불이 켜지면

운동장 한 켠

가로등 불빛이 아이들이 놀던

텅 빈 놀이기구를 비추고

학교 앞 적막한 거리에는

농협 자동입출금 불빛이

도시의 편의점인 마냥 동그랗게 켜진

아홉 시 넘은 시간

오랜 만에 갖고 온 자동차

시동을 켜면

전조등 불빛이

어둠 속 학교 건물을 따뜻하게 비춘다

 

4차 산업혁명과 학교 2

 

학생들이 도전 정신을 키우고

실패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학교가 도전적이지 않습니다

규정이니

지침이니

업무니

넘어야 할 장애물이 너무 많습니다

 

정해진 교과서

정해진 평가

정해진 공간

정해진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제도권 선생인 나도

이것부터 따지고

이것이 있어야 편안합니다

 

 

                              * 김규중 시집 2학년과 2학년 사이에(작은 숲, 2021)에서

                                                          * 사진 : 병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