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근 버스에서 내리며
새벽 버스가
정류소 이름을 하나 하나 읽으며
아흔세 곳
마을 정류소를 들려
드디어 무릉리에 도착하였습니다
오늘 하루
유치원에서 중학교 3학년까지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122명 친구들과
눈 맞추고서
퇴근하자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 상대방 이해하기
학교 운영에
문제 제기를 받았습니다
고민이 많았습니다
나의 진심을 이렇게 몰라줄까
내가 어느 과정에서 미흡했을까
더 깊고 깊어지는
고민의 끝에서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나보다 더 고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문제 제기한 사람입니다
♧ 초임 교사
학년 초 회식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성찰을 가르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서 깜짝 놀라게 하더니
중간 통지표에 시를 담아서
학부모에게 아이들의 성장 이야기를
멋있게 선물하더니
태풍이 몰아치던 날
이른 시간에 와서 교실을 살펴보고
아이들 한 명 한 명 궁금해 하는
한 기대되는 초임 교사
꺾이지 않게
♧ 공문
학교 교육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지만
교육청에서 내려온 공문
계획을 세우고 실적 보고하라는 공문
이럴 시간과 노력이면 학생 한 번
더 보살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공문을 묵살하고 싶지만
다음에 올 따가운 말
그래 잘 하는지 보자
학교의 자율성을 확보한다면서
공문을 묵살하고 있는데
자율성을 살려 얼마나 교육을 잘 하는지
이 따가운 시선을 이겨낼
내공이 약해서
결국 수용하고 만다
♧ 늦은 퇴근
도서관 학부모도 가고
골프교실 마을 주민도 가고
마지막으로 밴드동아리 학부모도 가고
학교 건물에 불이 켜지면
운동장 한 켠
가로등 불빛이 아이들이 놀던
텅 빈 놀이기구를 비추고
학교 앞 적막한 거리에는
농협 자동입출금 불빛이
도시의 편의점인 마냥 동그랗게 켜진
아홉 시 넘은 시간
오랜 만에 갖고 온 자동차
시동을 켜면
전조등 불빛이
어둠 속 학교 건물을 따뜻하게 비춘다
♧ 4차 산업혁명과 학교 2
학생들이 도전 정신을 키우고
실패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학교가 도전적이지 않습니다
규정이니
지침이니
업무니
넘어야 할 장애물이 너무 많습니다
정해진 교과서
정해진 평가
정해진 공간
정해진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제도권 선생인 나도
이것부터 따지고
이것이 있어야 편안합니다
* 김규중 시집 『2학년과 2학년 사이에』(작은 숲, 2021)에서
* 사진 : 병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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