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늙은 다래나무 – 강영순
운장산 늙은 다래나무
팔순 넘은 둘째 언니
논문 한 편 없어도
산나물 박사
다래순 고추나물
산밭 오가피순
맛있게 먹는 법
해마다 답은 달라도
간장 된장 고추장
참기름 들기름
조물조물 손맛
그냥 그렇게 무쳐봐
드러난 나무뿌리 같은
투박한 말솜씨지만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정감 어린 말씀
참, 언니 그런데
된장 고추장 다 먹었네
올봄 고사리 보낼 때
함께 넣어 보내주세요
♧ 산길에서 - 김귀녀
산길을 걷는다
코와 입을 막았던 답답한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양팔을 벌려 심호흡을 한다
얼마 만에 마셔보는 신선한 공기인가
소나무 숲길을 걷는다
머리 윗부분을 손끝으로 톡 톡
두들겨 본다
콧물이 나와도
머리만 따끈해도
코로나 공포증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인가
우리에게 다가온
지금의 현실이 믿겨지지가 않는다
코로나 19로 만사가 힘 빠져 있을 때
가끔 거침없이 펼쳐져 있는 울창한
태초의 숲에서 기운을 받는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실 그 때는
두 손 두 발로 자연과 더불어
살라 하셨지만 우리는 무한한 꾀로
신의 목적에 반대 되는
삶을 살았다
선사시대, 갈대숲이 있는 움막 속에서
비와 바람과 더불어 자연 속에서 살았던
그 때의 그 삶을 생각해 본다.
지구를 정화시키기 위해서일까?
오늘도 코로나는
잠시도 멈춤 없이
필터 역할을 하고 있다
♧ 청산에 살어리랏다 – 김청광
봄꽃 떨어져 쌓이니
여름 가쁜 숨결
숲은 있는 옷 다 꺼내 산색을 치장하는 동안
머루꽃 피었는지
다래꽃 피었는지
청설모 다람쥐보다
더 가쁜 나의 숨결
머루 익어야
다래 익어야
청산에 살 수 있다고
그 옛날 님이
가슴 치며 부른 노래
머루 다래 잘 익어 지천으로 떨어지고
나무는 잎잎마다
넘치게 무성해도
님의 사랑 없으면 어찌
청산인들 살 수 있으랴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 미로 - 민수호
갈 수 없는 하늘과
갈 수 없는 땅도 많지만
내 마음 그 마음은
이제는 가고 올 수가 있을 거야
이런 미로 같은 세월 흐르니
세월을 감아 왔고
마음을 쌓아 왔으니
달빛 같은 자존심 그림자
눈칫밥 보자기 던져 버리고
길 잃었던 마음 씻고
이제는 희망,
두 손 만세 같은
함성지르며 머리 들어 본다
♧ 선자령仙子嶺 - 박수성
저 산을 넘어오는
바람에 귀 기울여봐
탄생의 울음소리
축원의 바라哱囉소리
산허리 맴도는 워낭소리
꽂상여 노래소리도
바람에 실려 바다로 간다네
위로의 문을 여는 초목
오솔길 따라 고운 들꽃
바람을 품고 사는 너른 재
하늘을 덮고 밤을 지새우며
우리네 가슴으로 쏟아지는
별과 이야기를 나누노라
허전하고 목마른 사람아
언제나 사랑으로 살자며
우리네 마음 보듬어주는
넓은 가슴 선자령에는
오늘도 바람이 분다네
♧ 하늘 아래 첫 동네 - 박일소
맑고 고운 하늘이 내려 와
나뭇잎이 더 파란가
보랏빛 엉겅퀴가 피고
코스모스 해맑은 하늘 아래 첫 동네엔
물소리마저 파래서
내 안에 물들고
곱디고운 손
벗은 발
물에 담그니
마음까지 물들어서
어느 게 나무인지
그대인지
분간을 못하겠네
* 『산림문학』2021년 여름 통권 42호에서
* 사진 : 하늘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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