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조한일 시 '김치와 손편지'외 4편

김창집 2021. 7. 3. 23:35

김치와 손편지

 

  손으로 김장 김치 쭈욱 찢어 먹을 땐

 

  손편지 담은 봉투 쭈욱 찢던 생각난다. 마늘 닮은 그리움이 버무러져 있었고 생강 닮은 외로움도 버무러져 있었다. 소금물 배인 편지란 걸 단박에 알면서도 싱겁지도 짜지도 않은 그리우나 그립지 않은 새우젓이 든 듯 만 듯 외로우나 외롭지 않은 배춧잎 사이사이 행간들 사이사이 빨간 양념에 달아오른 내 얼굴도 그 편질 닮아 항아리에 담아 땅속에 오래 묻어 두었던

 

  해마다 늦가을이 오면 눈에 선한 편지 몇 포기

 

투명방음벽

 

  투명해 다치기 쉬운 벽이 있다 사람들 사이에

  공간이 보인다고 무작정 다가서면

  누굴까 그 벽에 부딪혀 나뒹굴지 않을 이

 

  허공을 날아가다 본능대로 내지른

  유언도 남기지 못한 청딱따구리 사고사

  멀쩡히 눈 뜨고 당한 되지빠귀 접촉사고

 

  훨훨 날갯짓하다 푸드덕 놀라는 새여

 

  인간의 눈으로만 바라보는 세상과 인간의 귀로만 듣고 있는 세상과 인간의 손으로만 만지는 세상과 인간의 다리로만 걷는 세상 신호등도 없고 횡단보도도 없고 고층빌딩도 없고 공장도 없고 절망도 없고 희망도 없고 굴욕도 없고 명예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서 잃을 것조차 없어서 하늘을 날다가 또 날다가 지칠 때쯤

 

  새들은 냅다 들이받는다 제 앞이 막힌 줄 알면서

 

view

 

별꼴 다 보고 살면서 뭘 또 볼 게 있다고

리버뷰다 시티뷰다 뷰가 부라며 침 튀긴다

전망에 수억 원 얹어 파는

수도 서울 아파트

 

아내 얼굴 남편 얼굴 딸 얼굴 아들 얼굴

한 달에 몇 번이나 값지게 바라보나

가끔은 생소해 보일

난 누구의 뷰일까

 

벽돌

 

깎아지른 생이었다

무심한

기다림은

 

홀로이

버텼다면

빛날 일도 없었을

 

번듯함

그 하나 바라보며

생을 괴던

몸부림

 

누락 그리고 보편적 생각

 

   온종일 명절 연휴 노동의 안부 물어오네요.

 

   설 전날 수백 번 울리는 대표전화 똑같은 문의. “내일도 영업하나요?”, “오늘 문 열었나요?”, “, ··· 365일 영업합니다.” “그래요? 아휴, 감사합니다.” 반가우면서 측은해하는 그 목소리 그 느낌. 물건 사러 오마 꼭 오마 다짐 또 다짐한다. 외지에서 삼십 년 만에 불알친구 만난 듯, 생각지 않던 로또 3등 당첨이라도 된 듯, 복지법은 배부르고 등 따신 쪽부터 시작되는 수년에서 수십 년 썩지 않는 그림의 떡. 토일, 공휴일 휴무는 해가 동쪽에서 뜨는 그런 것. 최저시급 보장은 해가 서쪽으로 지는 그런 것. 유급 병가는 장미 가시에도 찔리면 아픈 그런 것. 육아휴직은 겨울 지나 복수초가 피는 그런 것. 성과급은 비 오면 우산 펴는 그런 것. 공로연수는 바람 불면 잎이 떨어지는 그런 것. 야근수당은 건강검진 날 긴장되는 그런 것. 단체교섭은 개 짖는 소리를 개소리라 하는 그런 것. 감정노동에 익숙해지며 자신을 숨기는 사람, 소기업 멀티 플레이어, 365일 마트 종업원, 119구조대 소방관, 병원 응급실 간호사, 시내버스 운전사, 톨게이트 근무자들 지친 어깨 아픈 허리 주물러 주다가도

 

   행여나 대한민국 주부 빼놓지를 말아요.

 

 

                                      * : 조한일 시집 나를 서성이다(시와 실천, 2021)에서

                                                          * 사진 : 물양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