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랑쉬오름*
단 한 번 끓어올라 지나온 만년 세월
그 흔적 붉은 송이 오름 곁을 못 떠나고
둥글고 아찔한 분화구 모습은 그대론데
한 쪽이 터져버린 말굽 같은 저 사랑도
질펀하게 쌓여버린 원추 같은 그 사랑도
반듯한 이런 사랑을 질투하고 있는데
그 후론 두 번 다시 타오른 적 없었다는
화산섬 동쪽 땅에 지독히도 숨을 죽인
제왕의 뜨거운 사랑을 보고 있냐 말이다
---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제주도의 대표적인 오름(독립화산체)으로 “오름의 제왕”이라고 불리움. 분화구의 종류에는 말굽형, 원추형, 원형, 복합형이 있음.
♧ 잡초
어머나
이 꽃 좀 봐
세상에
정말 이뻐
카메라 들이대는
여인의 발밑에서
부르르
몸부림치는
못 생긴
풀포기
♧ 그날 텃새들에게 대답을 못 했다
수백 년 일군 밭에 들어서는 빌라 몇 동
누워서도 바람 막는 베어진 삼나무들
이제는 편안히 쉬시라 바람 없는 곳에서
못나게 태어나서 용도변경 쿠데타로
굴착기와 덤프트럭이 머리띠도 두르지 못한
키 작은 풀포기들을 무심히 짓밟고 간다
상수도 끌어오고 도로를 내는 사이
습관처럼 날아들던 텃새들 멈칫하며
우리는 무엇에 쓰이다 버려지나 묻고 있다
♧ 수크령
수렁에서 날 건져준
그 사람을 위해서
들녘에 스크럼 짜고
하늘 보고 누웠어요
그 사람
해코지하면
가만 두지 않아요
♧ 최저임금제
가장 낮은 곳에 임금님이 계신 거야
기막히게 딱 그 선에서 알바다 노동이다
어딘들 아니겠냐만 최저가 곧 최고인 이 땅
최소한 88만원은 최대한 88만원
임금 위에 임금 없고 임금 아래 임금 없다
버젓이 구인공고에도 급여는 ‘최저 시급’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전하 성씨가 최 인가요?
하늘이 기뻐하고 백성이 우러릅니다
최저만 맞춰준다면야 최, 저 임금 성군聖君이지
*조한일 시집 『나를 서성이다』(시와실천, 2021)에서
'문학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일을 여는 '작가' 2021년 상반기호의 시 (0) | 2021.07.17 |
---|---|
권경업 '낡은 사진첩' 외 5편 (0) | 2021.07.15 |
김항신 시집 '라면의 힘보다 더 외로운 환희' 발간 (0) | 2021.07.13 |
이민화 시 '오래된 잠' 외 6편 (0) | 2021.07.12 |
'우리詩' 2021년 7월호의 시들(2) (0) | 2021.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