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항신 시집 '라면의 힘보다 더 외로운 환희' 발간

김창집 2021. 7. 13. 10:17

시인의 말

 

이태 전,

첫 시집 발간의 기쁨은

두 번째 자아를 찾는 애증의 씨앗이었다.

 

다독다독 내 안에서 싹 틔우고

꽃 피운 시어들

마음 한 편으로 위안을 삼으며

 

다시 희망 실어

닻을 올린다.

 

 

                           2021년 유월, 김항신

 

인생은 연극

 

일에서 육삼까지 곡예의 길

걸었다

외줄 타기 인생에서 떨어지고 넘어지며

가시밭길 지르밟고 아름 걸음 걸었다

인생 육십 갑절 허송세월

칠갑산 고지가 눈앞인데

곱이곱이 가시밭길 녹록지가 않네

 

인생 2막일랑

모노드라마처럼 그렇게

살아볼까

애처롭고 안쓰러운 고슴도치

내 나이 돼서야 알까

잠시

세상 구경 왔다

소꿉질하다

동반자 만나는 것

퉤께* 뒈께** 같은 새끼들과 지지고 볶다

팔도 유람하며 여유되면

세계 두루 구경하다 남은

노자 몇 푼 경비에 보태 쓰면

그만인

 

그저 잠시인 것을

 

---

*토끼, **돼지

 

당에 가는 날

 

나도 외숙모처럼 외숙부의 어머니처럼

당에 가는 날이 있었다

 

김녕 중학교 옆 궤네기당은 멀어서 못 갔지만

 

사실 이 곳이 당연한 것이라 여기며 살았던 세월

아들 못 낳은 어머니는 들려보기나 했는지

가물거리던 세월

아들 딸 예닐곱 낳던 외할머니

여기에 와 보기는 했는지

몰랐던 시절

대 구덕* 속에 밥 떡 과일 삼종 채소와

국 생선 술 향료 준비하여

새벽길 나서던

 

언제부터인지 개발이 되며

수원지가 생기며 흔적이 사라지고

서천 꽃밭 놀고 있는 환생꽃 찾아간 것인지

본향으로 돌아갔는지 모르는 세월은

사십 년 지나 궤네기에서 다시 볼 수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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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로 짠 바구니

 

반딧불이 향연 - 김항신

 

별이 쏟아지는 인도네시아 클리아스 강가

록 카위 공원에 배를 띄운다

죽죽 오른 아리아의 세레나데처럼

샹들리에 불빛 실어내는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살아간다는 것

 

우리는 죽음보다 더한 냉혹하고 절실한 체험이 아닐까

 

살아간다는 것은

고독을 아는 고뇌의 저항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가버린 날들 회상하며

다정한 모멸감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미죽은 시인일지도 몰라

 

어머니 등짝

 

입체화처럼 피워낸 꽃송이는

어머니 허물이었습니다

 

대파 등에 달랑이는 매미의 허물

얼마나 붙들었으면 바람도 어쩌질 못했을까요

몸에서 몸으로 밭아 내는

우주의 시간

 

진자리 마른자리

업어주고 얼러주던 어머니

버섯처럼 피어난 속절없이 울어대는

회억의 등걸이었습니다

 

COVID 19

 

1.

 

아프다 무겁다 버겁다 지치다 그만둘까 그러기엔 아깝다

그러면 버릴까 그럴까 그러자 하나씩 하나씩 가지치고

솎아내고 이렇게 하다 보니 인내하고 중단하고 버리고

하다 보니 하늘도 청청 내 마음도 청청

 

이제 숨 좀 고르며 살 거나

 

2.

 

설마 했던 마스크와 상상 못한 지나온 모순들

자유롭고 싶으나 투명에 가둔 채 볼록볼록 숨만 쉬는

어쩜, 이렇게 세계를 쥐락펴락 하는지

소리 없는 꼬리는 꼬리 물며 숨통 조이고 심장 갈구고

 

얼마만큼 먹어댈까

 

3.

 

너희 볼 겨를 없었네 봄이 오는 소리 무서워

너무 시려서

아가들 쳐다볼 겨를 없었네

어르신 돌아볼 겨를 없었네

얘기할 짬, 없이 만져줄 틈, 없이

 

그래도 시련은 지나고 봄날이 오고

또 봄, 오지 않겠나

아지랑이 사이 기웃기웃 웃으며

 

그렇게

 

 

                       * 김항신 시집 라면의 힘보다 더 외로운 환희(도서출판 실천, 202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