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조한일 시조 '다랑쉬오름' 외 4편

김창집 2021. 7. 14. 13:08

다랑쉬오름*

 

단 한 번 끓어올라 지나온 만년 세월

그 흔적 붉은 송이 오름 곁을 못 떠나고

둥글고 아찔한 분화구 모습은 그대론데

 

한 쪽이 터져버린 말굽 같은 저 사랑도

질펀하게 쌓여버린 원추 같은 그 사랑도

반듯한 이런 사랑을 질투하고 있는데

 

그 후론 두 번 다시 타오른 적 없었다는

화산섬 동쪽 땅에 지독히도 숨을 죽인

제왕의 뜨거운 사랑을 보고 있냐 말이다

 

---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제주도의 대표적인 오름(독립화산체)으로 오름의 제왕이라고 불리움. 분화구의 종류에는 말굽형, 원추형, 원형, 복합형이 있음.

 

잡초

 

어머나

이 꽃 좀 봐

세상에

정말 이뻐

 

카메라 들이대는

여인의 발밑에서

 

부르르

몸부림치는

못 생긴

풀포기

 

그날 텃새들에게 대답을 못 했다

 

수백 년 일군 밭에 들어서는 빌라 몇 동

누워서도 바람 막는 베어진 삼나무들

이제는 편안히 쉬시라 바람 없는 곳에서

 

못나게 태어나서 용도변경 쿠데타로

굴착기와 덤프트럭이 머리띠도 두르지 못한

키 작은 풀포기들을 무심히 짓밟고 간다

 

상수도 끌어오고 도로를 내는 사이

습관처럼 날아들던 텃새들 멈칫하며

우리는 무엇에 쓰이다 버려지나 묻고 있다

 

수크령

 

수렁에서 날 건져준

그 사람을 위해서

 

들녘에 스크럼 짜고

하늘 보고 누웠어요

 

그 사람

해코지하면

가만 두지 않아요

 

최저임금제

 

가장 낮은 곳에 임금님이 계신 거야

기막히게 딱 그 선에서 알바다 노동이다

어딘들 아니겠냐만 최저가 곧 최고인 이 땅

 

최소한 88만원은 최대한 88만원

임금 위에 임금 없고 임금 아래 임금 없다

버젓이 구인공고에도 급여는 최저 시급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전하 성씨가 최 인가요?

하늘이 기뻐하고 백성이 우러릅니다

최저만 맞춰준다면야 최, 저 임금 성군聖君이지

 

 

                                       *조한일 시집 나를 서성이다(시와실천, 202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