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조한일 시조 '아마존으로 간다' 외 5편

김창집 2021. 7. 25. 10:26

아마존으로 간다

 

말이 씨가 되기도 하고 가 되기도 하지만

말만 하면 외국어로 바꿔주는 어플에

내 시가 걸려든다면 어떻게 번역될까

 

우리말로도 읽지 않는 시조, 시조가 말이야

거기에 또 허탈한 게 있어 말 안 할까 했는데

심지어 눈 깜빡할 새 해치우고 만다는 거야

 

몇날 며칠 고치고 고민한 내 작품을 말이야

단번에 덮어쓰기 하며 말 바꾸기 해버릴 텐데

얼마나 속이 상하겠어? 눈치 없는 어플 때문에

 

세상사람 웬만하면 다 아는 영어 말고

다른 언어로 해 볼까? 불어? 인도어, 서어? 아랍어?

아니야, 이 언어들도 아는 사람은 알 거야

 

, 아마존 원주민들을 만나러 가야겠다

그들의 언어로는 어찌 익히나 궁금하거든

아직은 생각하면서 읽어 줄 인류가 필요해

 

도둑의 내성

 

계속 받기만 하는 건

훔치는 거라 하더라

 

제 발 저려 담장 넘어 도망치는 시늉 마라

 

누군들

도둑, 한 번쯤

돼본 적 없었으랴

 

받는 데 익숙해져

절도죄 된다 해도

 

실형 선고는 되지 않고 툭 하면 집행유예

 

제기랄,

내주려고만 하는

역류성 식도염

 

탁상달력

 

일 년짜리

삶을 살아도

너 가히 당당하다

 

힘겨웠던 서른 날을

다리 벌려 딱 버티며

 

긴 머리

쓸어 넘기듯

젖혀버리는

저 평정심

 

노쇼 no-show

 

단체 손님 맞을 준비 한창이던 식당 주인

약속시간 삼십 분 전 못 온단 일방 통보

툭 끊은 전화기 너머 울컥하는 저녁놀

 

예약금도 못 받는 명퇴자 골목 식당

구조조정 회사에서 한때는 살아남고

천하의 아이엠에프도 기어이 견뎠는데

 

예약 부도 이것이 밟아버린 자존심

테이블 위 수저들이 웅성대며 그를 보네

쇼쇼쇼 사는 게 다 쇼인데 노쇼라니 노쇼라니

 

출륙금지령

 

17세기 초 조선으로 자가격리 반송한다

제주말이 서울말과 이토록 다르게 된

역사도 거리두기 하는 2백 년 강제격리

 

진상하는 자 말고는 육지 땅을 밟지 마라

팬데믹 코로나다 집 밖에 나오지 마라

때 아닌 2주간 고립에 소환되는 출륙금지

 

무인택배함

 

정 줄 데 없으면 내게 두고 가시라

 

미움 전할 데 없어도 내게 놓고 가시라

 

그 사람 부재 시에는 두말 말고 맡기시라

 

 

내게 잠깐 왔다가도 슬퍼하지 않으리라

 

철커덕, 도로 내줘도 아파하지 않으리라

 

딱하나, 너 아주 없다면 나 많이 힘들리라

 

 

                                   *: 조한일 시집 나를 서성이다(시와 실천, 2021)에서

                                                        *사진 : 풍란(소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