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제주작가' 2021년 여름, 73호의 시(2)

김창집 2021. 7. 27. 12:13

위로 - 김순선

 

대문을 나서는데

반짝

눈길을 붙잡는다

 

흙이라곤 한 줌도 보이지 않는

시멘트와 시멘트 사이

어떻게 비집고 들어갔을까

 

민들레 한 송이

빙그레 웃고 있다

 

흙 한 줌 없는

그곳

그 좁은

사이를

 

환영인 듯, 홀연히 - 김항신

 

메마른 가슴에 촉촉한 눈물인 것은

깊고 고요함에서인가

 

바람의 헛간’*에 머물던 허깨비 6월을 읽다

가슴이 뭉클함은 홀연히 스치던 민들레 홀씨였나

 

감정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는

그 말, , 말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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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수 시집

 

58 문경수

 

꿈에서 만난 아버지

온몸에 산탄총을 쏴

화사한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장미 한 송이 꺾어

어머니 가슴에 달아드렸습니다.

 

집을 나올 땐 잊지 않고 자물쇠를 채웠습니다.

 

요란하던 기척은 멀어집니다.

 

빛이 쏟아집니다. 온통 시든 백국뿐입니다.

 

한 다발 뭉쳐 저녁 바다에 던졌더니

난분분하는 화환 사이로

 

윤슬에 떠밀려오는

어김없는 아버지

 

저어새 양순진

 

하도철새도래지 찾은

저어새

 

언 강

흰 갈대

그 여백에

 

사뿐히

겨울 가르네

 

베개가 없는 잠 양영길

 

사마귀가 몸에 앉으면 복이 찾아온다던 옹고디아네

초가집 에또고이니야 침대에는 베개가 없었다.

 

베개 없는 잠은 내게 얼른 상상이 안 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작은 베개를 시작으로

60년 넘게 크고 작은 여러 종류의 베개를 베고

수없이 많은 생각과 회상 속에 스치고 지나갔을 얼굴들

젊은 꿈이 많이 깃든

눈물로 얼룩진 베개

 

당연히 생각했던 베개

베개 없는 잠을 청하면서 이들의 삶을 상상해 보았다.

조이가 들려줬던 이야기

이곳 아이들은 가축들과 함께 자기도 한다는

그렇다면 침대도 없이 맨 땅에 자기도 한다는 것일까.

베개 없는 잠은

에또고이니야 지붕의 뾰족한 것처럼

생각의 끝을 겨누고 있었다.

역사 터널을 달리고 있었다.

 

이웃나라 이디오피에서 발견된

호모사피엔스 화석

현대인의 조상이 시작된 동아프리카의 밤을

베개 없이

잠을 청한다.

 

고운 손 진하

 

요양원으로 가신 지 채 반년이 못 되어

아버지의 손은 말갛게 고와졌습니다

둥그렇던 손톱도 갸름하게 길어졌습니다

그 모양이 내 손톱과 닮았음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늘 거칠고 때가 끼고 마디가 굵던 손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나의 충치를 들여다본다고

담뱃진이 역하게 묻은 양손의 엄지를

내 입속 혀뿌리까지 눌러대던 손이었습니다

장갑을 끼면 삽이 미끄러진다며

맨손으로 삽자루를 쥐던 손이었습니다

소고삐도 쥐고 경운기도 몰던 손이었습니다

그렇게 굵고 억세고 낯설던 손이었습니다

채 반년도 못 된 시간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손이 본래는 내 손처럼 가늘고 하얗고

갸름한 손톱이 곱게 자라는 손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시간이 말입니다

마른 나무처럼 검고 굵고 거칠어서

남들에게 꺼내기 부끄러워하던 손이

그렇게 고운 손이었다는 걸 알기까지 말입니다.

 

 

                                 * : 계간 제주작가2021년 여름, 통권 73호에서

                                            * 사진 : 파타고니아 모레노빙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