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홍해리 시 '꽃은 왜 지는가' 외 5편

김창집 2021. 7. 26. 14:33

꽃은 왜 지는가

 

소녀의 손가락에 나비 한 마리 내려앉았습니다

금빛 나비 여린 날개로 살포시 내려앉았습니다

금세 나비는 날아가 버리고

꽃은 덧없이 져 버렸습니다

꽃처럼 지는 것이 어디 있는가 묻습니다

꽃은 지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꽃이 왜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왜 하염없이 지고 마는지 더더욱 모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고 합니다

덧없어서 애틋하다고 합니다

하염없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가슴에 새겨 주고 꽃은 지고 맙니다

절로 피는 꽃이 금세 어두워지듯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합니다

오늘도 찬바람 부는 벌판으로 나갑니다.

 

 

찾아다니느라 늘 집을 비웠으니

아내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난에게 남편 빼앗긴

주말과부의 가슴이 얼마나 시렸을까

 

친구들과 술 마시고 자정에야 돌아와

새벽이면 빠져나가고

밤이면 다시 취해 기어서 들어왔으니

술에 익사한 남편을 건사하는 아내

사는 게 어디 사는 일이었겠습니까

 

시 쓴답시고

밤낮 시답지도 않은 걸 끼적거리며

시 쓰는 친구들 불러내 술이나 마셔 댔으니

시에게 남편을 내주고 술에게 빼앗기고

 

아내는 모든 걸 놓았습니다

다 버렸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바로

내 탓, 내 탓입니다!

 

아내는 부자

 

나는 평생 비운다면서도

비우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버린다 버린다 하면서도

버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내려놓자 하면서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버린다 비운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내려놓는다는 말도 없이

아내는 다 버리고 비웠습니다

다 내려놓고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평안합니다

천하태평입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걱정이 없습니다

집 걱정 자식 걱정도 없습니다

아무 것도 거칠 것이 없는 아내는

천하제일의 부자입니다.

 

그믐달

 

가을이라고

 

술 취한 사내

 

밤늦어 홀로 돌아올 때

 

휘청거릴까 봐

 

넌지시

 

내려다보고 있는

 

나이 든 아내

 

젖은 눈빛.

 

집사람

 

집은 그런 것이었다

아픔이라고 또는 슬픔이라고

무슨 말을 할까

속으로나 삭이고 삭이면서 겉으로

슬쩍 금이나 하나 그었을 것이다

곡절이란 말이 다 품고 있겠는가

즐겁고 기쁘다고 춤을 추었겠는가

슬프고 외로웠던 마음이

창문을 흐리고

허허롭던 바깥마음은 또 한 번

벽으로 굳었을 것이다

아내는 한 채의 집이었다

한평생 나를 품어준 집이었다.

 

아내새

 

한평생 나는 아내의 새장이었다

아내는 조롱 속에서 평생을 노래했다

아니, 울었다

깃털은 윤기를 잃고 하나 둘 빠져나갔다

삭신은 늘 쑤시고

아파 울음꽃을 피운다

이제 새장도 낡아 삐그덕대는 사립이

그냥, 열린다

아내는 창공으로 날아갈 힘이 부친다

기력이 쇠잔한 새는

조롱조롱 새장 안을 서성일 따름

붉게 지는 노을을 울고 있다

담방담방 물 위를 뛰어가는 돌처럼

온몸으로 물수제비뜨듯

신선한 아침을 노래하던 새는

겨울밤 깊은 잠을 비단실로 깁고 있다

노래도 재우고

울음도 잠재울

서서한 눈발이 한 생을 휘갑치고 있다.

 

 

                                     *: 홍해리 시선집 마음이 지워지다(놀북, 2021)에서

                                         *사진 : 연꽃(서대문구 안산 봉원사, 2017.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