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종호 시 '정말 미안하다' 외 5편

김창집 2021. 7. 29. 16:53

정말 미안하다

 

가난한 60년대, 아내는 밭에 가고

집에 남아 아기를 보던 때가 있었지

분유를 아끼느라 묽은 젖병을 물리면

반은 물로 배를 채우고 순하게 잠이 들 때

애기구덕* 흔드는 대로

왼쪽으로 꼴랑, 오른쪽으로 꼴랑

꼴랑꼴랑 스미는 슬픔과 분노로

허공에다 마구 주먹질을 해대곤 했었지

작은 놈이 고3 , 브랜드 신발을 사달라고 조를 때

, 이놈아! 아비는 칠천 원짜리 신으면서,

그래도 네겐 팔천 원짜리인데 무슨 불만이냐?” 했더니

아방*, 우리 친구들이 뭐라는 줄 알아?”

니네 집 경 가난하여?” 한다며 눈물을 보이는 거였다

허 참, 할 말은 많은데 할 말은 없고,

턱하니 이만 칠천 원을 주고 나이키 신발을 안기고는

나도 돌아서서 눈물 흘렸다는 거 아닌가

그 세월 다 어디 갔는지?

지들대로 직장 생활하면서 잘들 지내니

그게 너무 고맙고 미안한 거다. 아비랍시고

무등 태워주지도 못하고, 공도 같이 차주지 못하고

변변한 대화도 못했는데 들풀처럼 무성하다

때로 지들 엄마와 티격태격할 때면

아방 잘한 게 뭐우꽝?” 하며

편찮은 지들 엄마 편에 설 때면

이것들이하다가도

그게 고마워서, 내가 돌아서서 또 울었다는 거 아닌가

지들도 넉넉지 못한 살림일 터에

매달 꼬박꼬박 보내는 용돈을 받아 쓰면서

자격 없는 아비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정말 고맙다 미안하다

 

---

* 아기구덕 : 요람의 제주말.

* 아방 : 아버지.

* : 그렇게.

 

고내오름* 소쩍새

 

꽃들이 팡팡 터지는

막막한 봄 사월

소쩍

소쩍

솟 소쩍

고내오름 청량한 새벽

그리움에 발걸음을 적십니다

 

밀항선 타고 떠난

우리 누나는

등에 업어 키운 오랍을 못 잊어

재 한 줌 돌아와서 울고 있습니다

 

옛날

옛날

그 옛날

그리움에 눈만 남은 우리 누나는

고내오름 어미무덤 발치에 앉아

오늘도 온 새벽을 울고 있습니다

 

---

*고내오름 ; 제주도 고내리 소재 표고 167미터의 작은 산.

 

낡아가는 사랑

 

배암이 벗어놓은 허물에

겨울 햇살이 눈을 찌를 때

새벽이슬도 차마

마른 잎을 적시진 못했으리

 

함께 창밖을 바라보면서 너와 나

서로 다름도 참 싱그러웠는데

노래하던 새들은 겨울 숲을 떠나고

얼마쯤 사이를 두고 나무들은 서서

지음(知音)의 기억 속으로 젖어들고 있다

 

고집을 버린 페인트의 순한 눈빛과

벽을 끌어안은 푸름을 버린 담쟁이

세월의 너그러움에 너와 나

끄덕이면서 함께 낡아가는 사랑

난로의 온기에 무심히 손을 펴며

착한 눈빛을 내리고 묵묵히 있다

 

새소리 9

 

하늘을 건너는 새들은

쉬지 않고 날개를 파닥이지

하늘엔 거짓이란 없지

별빛으로 눈을 닦고

새벽이슬로 가슴을 닦고

무한 고독을 건너려는 새들은

노래를 부르며 부르며 날아가지

노래를 잃으면 길도 잃고 말지

 

사람들은 지름길을 찾지

곧잘 거짓에 몸을 숨기지

미심쩍은 사람들은 기록을 뒤지지만

떨리는 손으로 기록한 역사는

고장 난 레코드, 제자리를 맴돌고 있지

잃어버린 본성이 그리운 사람들은

바벨론의 강가에 울면서 시온을 노래하지*

내 안에 길을 두고 산 너머로 떠나지

돌아갈 길을 모르고 한탄하며 그리워하지

예술은 더욱 그리워지려는 것, 그래서

과장된 위장술로 위로 받으려 하지

 

새들의 날개는 자유롭고

하늘을 건너려는 새들은 노래를 부르지

새들의 노래는 하늘처럼 파랗지

 

---

* 시편 137 : 1.

 

텅 빈 허공

 

아내가 떠난 후

방에서 거실로, 주방에서 텃밭으로

종일 빙빙 도는 텅 빈 허공

명치끝에 물컹한 허공이 있다

주방에 들어서면 달그락거리는

숨어 있던 허공이 와락 나를 덮친다

밥 두어 술을 국에 말아 후루룩거리면

물컹한 무엇이 꺽- - 역류한다

 

병원을 들락거리던 5개월에

아내는 내 가슴을 허공으로 꽉 채우고 떠났다

슬픔, 자책, 후회의 그 물컹한

방향도 없이 자꾸 서운하고

물속같이 깊고 울울한 덩어리

그 오랜 세월 질기게 쌓여온,

한 공간을 숨 쉬며 내 속에 자라던,

저는 훌훌 날아가고 내게 남은 텅 빈 허공

 

아내의 방에 들어서면

빈 침대에 도사리고 있던

오한처럼 나를 덮치는 허공

그녀의 베개와 이부자리 그대로

아내의 몸 대신 나를 눕히고

그녀의 텅 빈 허공을 재우려고

모질게 눈을 감는다

 

그리하여

 

그리하여 오늘은

나의 운명, 눈빛을 마주하여

어제를 보내고 쓸쓸한 오늘

한 편의 시를 읽으며 내일 또

오늘을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내일은

영영 오지 않는 꿈

날마다 잊히면서

그리움마저 무너지고

버티던 날들의 허무한 노래

 

그리하여 나는

아무도 낭송하지 않는 시

길가에 지는 꽃잎에 비가 내리고

가슴에 남은 그리움으로

천상병의 노을이나 새기다가

 

그리하여

바람 좋은 날

기억의 먼지라도 없는 날

고향 길에 하얀 민들레를 날리며

당신의 시 한 편을 탈고하리라 하오니

 

 

                                 * 시 : 김종호 잃어버린 신발(푸른시인선 023, 2021)에서

                                                        * 사진 :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