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순선 시 '다 이루었노라' 외 5편

김창집 2021. 8. 16. 00:56

다 이루었노라 - 김순선

 

동산 언덕에 홀로 서 있는

동백나무 밑에

누가 꽃 멍석을 깔아놓은 듯

동백꽃 조명이 눈부시다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상처 하나 없다

저 높은 가지에서 뛰어내렸을 텐데

누가 등을 떠밀지도 않았을 텐데

생애 최고 절정의 순간을

망설임 없이

사뿐히

 

바람벽 모퉁이에 - 김순선

 

파란 하늘에

흰 구름 애드벌룬 떠다니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세 들어 사는

하늘래기

 

정지 바람벽 모퉁이에

매달아 두었던

어머니 마음

건어물처럼 말라가고 있다

 

혼신의 힘으로

계절을 기어올라 보란 듯이

황금 열매 주렁주렁 매달렸는데

새들도 거들떠보지 않아

풍장 되어가는

빈 젖

 

탈출 - 김순선

 

맛보라고 옆집에서 건네준

바닷게 한줌

비닐 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다음날 아침

현관문을 나서는데

현관문 틈에 끼어 있는 게 한 마리

 

밤새 냉장고를 기어 나와

사막 같은 거실을 지나면서

고향을 꿈꾸던

선구자

 

가도 가도

거품 물며

옆길로 빠지면서도

 

자유를 갈망하며

출렁이는 바다를 향하던

위대한 행보

 

도대불 - 김순선

 

뒷방으로 밀려난 노인처럼

바다에서 올라온

도대불

 

여기가 어디라고

한경면 고산리에서

건입동 동산까지

피붙이 하나 없는 외로운 길모퉁이에

 

파란만장한 세월

어둠을 밝히던 시절 다

접고

 

아스팔트 바닥까지 올라와

운동하는 사람이나

쓰레기 버리러 오는 사람들

뒤통수나 쳐다보다가

흘러가는 구름 따라

먼 바다로 눈을 돌리는가

 

등대를 향해 김순선

 

나는 오늘 이 길을 걸어가네

자욱한 안개 속에

숨바꼭질하며

앞서간 시계바늘 뒤로 돌려놓고

당신의 과거 같은

단단한 시멘트 길을 무겁게 말아 올리며

땀으로 얼룩진 돌멩이들

사이

빛나는 눈물 찾아

보석 캐듯

바다 바닥이 보일 때까지

모세 기적 위에 만들어진

시멘트 길 위에서

물 위를 걸어가듯

당신을 향해

 

재택근무 중 김순선

 

코로나19로 여기저기에

임시 폐관합니다

폐쇄합니다

폐업합니다

두더지게임 하듯

, ,

고개를 내민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뭇 일상이 그리워지는 날

바람도 한잔한 듯

거리를 비틀거린다

 

발길이 뜸한 들길에도

잿빛 하늘 밑에서 들꽃들이

소리 소문 없이 꽃을 피워내느라

한창 재택근무 중이다

 

하얀 이 드러내고

노란 손수건 흔들며

연보랏빛 소리로

힘내세요!

힘내세요!

 

 

                         * 시 : 김순선 시집 따뜻한 국물이 그리운 날(열림문화, 2021)에서

                                                       * 사진 : 황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