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젊은시조문학회 '팽나무 손가락'의 시조(2)

김창집 2021. 8. 13. 00:07

비파나무

 

한겨울 솜털 속에

몽글몽글 꿈을 키우던

 

비파나무 가지 사이

쉬엄쉬엄 내미는 열매

 

웃음꽃 노란 송이가

내 아이를 닮았다

 

꽃무릇 - 김정숙

 

당신이 반려한

고백 때문입니다

 

폭우 속 절절 끓인

저 대책 없는 문장은

 

무릇,

수취인불명

한참이나 붉겠죠

 

귤꽃 학교 김조희

 

귤꽃도 글을 읽는 수산리 마을학교

봄 햇살에 터지는 꽃망울 소리들이

울타리 돌담 너머로 향기처럼 퍼지고

 

아름드리 가지마다 하나둘 매달려

하늘 향한 팽나무 손가락을 잡으면

가만히 허리 굽히며 제 등을 내주고

 

층층이 쌓아올린 아이들 웃음소리

꽃이 핀 화석처럼 울타리를 지켰지

수산리 수산진성에 발자국 또 찍으며

 

이름을 읽다 신해정

 

학교 가는 친구 보면서 남몰래 울었지

남의 밭일만 하며 몇 십 년을 살았어

소처럼 일하고 먹으면 사는 줄로 알았지

 

부모님 묫자리 표지석도 못 읽었어

팔십 넘어 배운 글로 부모님을 만났지

얼굴은 생각 안 나는데 신절혜 정연북이라

 

상사화 최은숙

 

꽃과 나 사이로

갈바람이 지나가네

 

이별

그 너머로

강물이 흘러가네

 

그대가

돌아선 자리

상사화가 피었다

 

허경심

 

아파트 놀이터에

새순들이 아이들 같다

 

조팝나무 실가지에

줄을 지어 나서는 봄

 

바람도 그네를 탄다

하하호호 봄이다

 

백사장 백로 한 쌍 - 현희정

 

함덕 백사장에

북서계절풍이 분다

 

추울수록 김이 솟는

겨울바다 체온 밖으로

 

이제 막 백로 한 쌍이

하얀 깃을 펴는 날

 

추위도 환하게 웃는

후배님이 참 곱구나

 

후렴구로 밀려오는

오선지 겨울 파도가

 

신혼의 첫걸음 앞으로

흰 포말을 뿌린다

 

 

                           * 시 : 젊은시조문학회 작품집팽나무 손가락(통권 제7, 2021)에서

                                                       * 사진 : 누린내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