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종호 시 '오노라' 외 6편

김창집 2021. 8. 14. 09:15

오노라 - 김종호

 

밤하늘을 보다가

눈물 그렁그렁한 별을 보았지요

단번에 사랑의 별이라는 걸 알아봤지요

슬픔을 모르는 별이면 사랑도 모를 테니까요

나는 뜻도 없이 그 별을 문득

오노라라고 부르기도 하였지요

예쁜 이름을 지어주면 떠나지 않겠지요

 

오노라’, 가만히 뇌이면

반짝이다가, 반짝이다가

눈물로 방울방울

땅으로 녹아내리는 별

봄이 되면 양지바른 들녘에

오종종 꽃이 피어 반짝인다죠

 

사랑하는 사람마다

눈빛이 별처럼 반짝이는 건

모르긴 몰라도 어디선가

오노라 꽃을 만났다는 증거예요

 

햇볕 좋은 날 밤이면

글썽이는 오노라를 바라보지요

이 세상 가슴 아픈 사람들은

모두 사랑의 별을 만났으면 해요

 

당신 눈이 반짝이네요

내 눈도 반짝이나요

 

소망 김종호

 

속절없어라

지는 꽃잎에 내리는 비는

덧없어라

낙엽 위로 내리는 햇살은

 

글썽이는 그리움으로

별빛은 아름답고

뛰는 심장으로 사랑은

가슴에서 숨을 쉬나니

 

우리는 그렇다

저 길에 주저앉아 울면서

짓무른 발바닥으로

동터오는 새날을 바라보며

깨진 무르팍으로

안개 속을 걸어도

가야 할 길을 안다

 

어여뻐라

꽃이 진 마음에 듣는 빗소리는

눈물겨워라

벌레 먹은 나뭇잎에 내리는 햇살은

고마우셔라

가난한 문을 두드리는 음성은

 

사랑한다는 것은 김종호

 

사랑한다는 것은 바라보는 것이다

바라본다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믿는다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너와 나

최초의 약속으로

강물은 흐르고

꽃들은 피어나고

 

강나루에 어둠이 내리고

기다림은 하나둘 불을 켜는데

너를 사랑하지 못하고, 나는

어디를 두리번거리나

 

사랑은 믿음이요

믿음은 기다림이요

기다림은 바라봄이요

바라봄은 사랑하기 때문이다

 

가을에 2 김종호

 

휑한 들판을

앙상한 바람이 쓸고 가네

허수아비는 두 팔을 내리고

먼 산을 보며 있네

 

왠지 섭섭하여

돌아앉았노라니

여윈 낮달이 글썽이네

 

빈 하늘이

저리 깊은 것은

군불을 지피느라 종종대며

연기만 피웠나 보네

 

바스락바스락

총총히 사라지는

계절의 아쉬운 눈빛

 

그대 앞에서라면

오래 간직해온 모국어로

나 고백할 수 있네

사랑한다

 

분수 김종호

 

그리움도

지칠 양이면

부서져 내리는

꽃이 되는가

 

사랑도

사무칠 양이면

막무가내로

벼랑으로 서는가

 

무너지고

무너져서

아름다운 균형

 

허공에

무지개 한 채 띄워놓고

사랑만을 꿈꾸는가

 

반짝이는 것들 김종호

 

하얀 눈 위로

, 지는 동백꽃

 

두 살 방글거리는

쌀 두 알

 

물속 자갈 위에

알랑대는 햇살

 

빈터에 반짝이는

첫서리

 

순간을 긋고 가는

유성의 긴 꼬리

 

그리고 먼 날의

첫 키스

 

반짝이는 찰나

슬퍼서 아름답다

 

통풍(痛風) - 김종호

 

질긴 날들

막걸리 한 사발로

갈한 목축이며 왔는데

그게 영 마음에 안 드셨나

 

통풍이라 해서

나무그늘을 찾아드는

한자락 바람이려니 했는데

겨우 몸무게 60킬로그램에

웬 거머리 같은 바람이 다 있나

 

어쩌랴

지엄하신 감독님의 사인이시면

!”

큰소리로 대답하고는

그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

푸르게 일어서는 강물을 본다

 

매번 길이 막히면

또 한 길을 여시는 이

가난의 풍요를 알게 하시고

어쭙잖은 나의 시에

통풍을 달아주시니

심심찮은 벗 삼아 가려 하네

 

 

                            * 시 : 김종호 시집 잃어버린 신발(푸른시인선 023, 2021)에서

                                           * 사진 : 독일잔대(방림원, 2011. 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