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노라 - 김종호
밤하늘을 보다가
눈물 그렁그렁한 별을 보았지요
단번에 ‘사랑의 별’이라는 걸 알아봤지요
슬픔을 모르는 별이면 사랑도 모를 테니까요
나는 뜻도 없이 그 별을 문득
‘오노라’라고 부르기도 하였지요
예쁜 이름을 지어주면 떠나지 않겠지요
‘오노라’, 가만히 뇌이면
반짝이다가, 반짝이다가
눈물로 방울방울
땅으로 녹아내리는 별
봄이 되면 양지바른 들녘에
오종종 꽃이 피어 반짝인다죠
사랑하는 사람마다
눈빛이 별처럼 반짝이는 건
모르긴 몰라도 어디선가
오노라 꽃을 만났다는 증거예요
햇볕 좋은 날 밤이면
글썽이는 오노라를 바라보지요
이 세상 가슴 아픈 사람들은
모두 사랑의 별을 만났으면 해요
당신 눈이 반짝이네요
내 눈도 반짝이나요
♧ 소망 – 김종호
속절없어라
지는 꽃잎에 내리는 비는
덧없어라
낙엽 위로 내리는 햇살은
글썽이는 그리움으로
별빛은 아름답고
뛰는 심장으로 사랑은
가슴에서 숨을 쉬나니
우리는 그렇다
저 길에 주저앉아 울면서
짓무른 발바닥으로
동터오는 새날을 바라보며
깨진 무르팍으로
안개 속을 걸어도
가야 할 길을 안다
어여뻐라
꽃이 진 마음에 듣는 빗소리는
눈물겨워라
벌레 먹은 나뭇잎에 내리는 햇살은
고마우셔라
가난한 문을 두드리는 음성은
♧ 사랑한다는 것은 – 김종호
사랑한다는 것은 바라보는 것이다
바라본다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믿는다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너와 나
최초의 약속으로
강물은 흐르고
꽃들은 피어나고
강나루에 어둠이 내리고
기다림은 하나둘 불을 켜는데
너를 사랑하지 못하고, 나는
어디를 두리번거리나
사랑은 믿음이요
믿음은 기다림이요
기다림은 바라봄이요
바라봄은 사랑하기 때문이다
♧ 가을에 2 – 김종호
휑한 들판을
앙상한 바람이 쓸고 가네
허수아비는 두 팔을 내리고
먼 산을 보며 있네
왠지 섭섭하여
돌아앉았노라니
여윈 낮달이 글썽이네
빈 하늘이
저리 깊은 것은
군불을 지피느라 종종대며
연기만 피웠나 보네
바스락바스락
총총히 사라지는
계절의 아쉬운 눈빛
그대 앞에서라면
오래 간직해온 모국어로
나 고백할 수 있네
“사랑한다”고
♧ 분수 – 김종호
그리움도
지칠 양이면
부서져 내리는
꽃이 되는가
사랑도
사무칠 양이면
막무가내로
벼랑으로 서는가
무너지고
무너져서
아름다운 균형
허공에
무지개 한 채 띄워놓고
사랑만을 꿈꾸는가
♧ 반짝이는 것들 – 김종호
하얀 눈 위로
툭, 지는 동백꽃
두 살 방글거리는
쌀 두 알
물속 자갈 위에
알랑대는 햇살
빈터에 반짝이는
첫서리
순간을 긋고 가는
유성의 긴 꼬리
그리고 먼 날의
첫 키스
반짝이는 찰나
슬퍼서 아름답다
♧ 통풍(痛風) - 김종호
질긴 날들
막걸리 한 사발로
갈한 목축이며 왔는데
그게 영 마음에 안 드셨나
‘통풍’이라 해서
나무그늘을 찾아드는
한자락 바람이려니 했는데
겨우 몸무게 60킬로그램에
웬 거머리 같은 바람이 다 있나
어쩌랴
지엄하신 감독님의 사인이시면
“넷!”
큰소리로 대답하고는
그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
푸르게 일어서는 강물을 본다
매번 길이 막히면
또 한 길을 여시는 이
가난의 풍요를 알게 하시고
어쭙잖은 나의 시에
통풍을 달아주시니
심심찮은 벗 삼아 가려 하네
* 시 : 김종호 시집 『잃어버린 신발』(푸른시인선 023, 2021)에서
* 사진 : 독일잔대(방림원, 2011.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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