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종호 시집 '잃어버린 신발'의 시들

김창집 2021. 8. 30. 00:19

눈물길 2

 

바위의 가슴에도

눈물길이 있어

 

새들의 갈증으로

, , 떨어지는 물방울

 

우리 손을 잡고

바다로 간다

 

절망의 틈새를 열고

가슴에서 가슴으로 흘러

 

글썽이는 별빛 따라

우리 바다로 간다

 

너울

 

바다는 밤으로 사는지

저녁이 되어 깨어나는 항구

등대는 부엉이처럼 눈을 뜬다

 

배들은 어두운 바다로 결연하고

너울은 소리치며 달려와

철썩철썩!” 방파제를 때린다

 

사랑한다는 것은

가슴에 길을 내는 것

네게로 여울지는 것

 

등대는 저무는 하늘에

외로이 등불을 높이 드나니, 그대

어느 바다를 노 젓고 있느뇨

세월 너머 그대의 바다로

철썩철썩!” 너울지느니

 

숲에서 3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지

어디서 귀 맑은 물소리와

해질녘, 숲이 오솔길로 사라지는 땅거미

은사시나무의 속삭임은 가늘게 떨리고

어린 나무 가지를 흔드는 심심한 바람

 

저녁 한때

들꿩이 한적하다

숲에서는 숲이 되어

푸른 이내로 깊어가는

물소리가 되지

밤의 고요 속에

별빛 따라 가만 가만

풀잎에 오르는 달팽이와

하나인 듯 모두가

각각인 듯 하나로

숲의 연주를 합주하지

 

노을 빚기

 

노을이

저리 곱다 하오시니

 

노을 한 채

빚어드리리라 합니다

 

손 모아

쌓아도

쌓아도

하늘엔 닿지 않고

 

한 땀

한 땀

 

비단에 고운 색실로

채색 옷도 곱게

 

노을 한 채

빚어드리리라 합니다

 

풍란

 

오다가다 너와 나

눈 한 번 마주쳤다고

오다가다 되는 일인가

저 돌멩이의 기천 년

한라계곡 폭포 터져 내릴 때

천만번을 굴러오면서

말 한 마디, 미소 한 줌

뉘게 건넨 적 있었으랴

독하게 속내 감추고

이끼 낀 세월에

어느 날 풍란 한 촉

나비처럼 살포시 내려앉을 때

어이없고 황당하였을 터

정 한 푼 없는 돌멩이

사막여우처럼 목이 마르는

서로 다름을 질기게 견디어내는 것

드디어 하얀 나비 어여삐 내려앉으니

온몸으로 빚은 그윽한 향기

가마 타고 울며 가던 누나의 향기

 

끝없는 연주

 

숲을 걸으며

나는 고요한 청취자

새들의 노래에 귀를 열고

들국화 향기에 손을 흔들고

바람의 노래를 따라가며

그 더욱 하늘의 연주를 듣는다

 

듣는 것은

마음을 여는 것, 그리고

손을 잡는 것, 그리고

함께 연주를 하는 것이다

 

산과 바다를 걸으며

나는 고요한 청취자

퉁퉁거리는 삶과 노래와

숨을 멈추고 부르는

침묵의 노래를 듣는다

 

 

                                  *김종호 시집 잃어버린 신발(푸른 시인선 023, 202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