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출봉日出峯을 내려오며
섬 끝 물굽이에
깎일 것 다 깎이고
돌아서면 가슴에 안겨
흐느끼는 신양리新陽里 바다
흐름도
낙일落日에 맡기랴
정情을 두지 못하네.
♧ 성냥개비
한 올 빗줄기야
남겨서 좋으려니
짙푸른 눈을 뜨고
사위는 목숨이여
환생還生의
그대 연못에
오래 피는 연蓮이고 싶다.
♧ 소리개
아득해 보일수록
마음 더욱 가는 것이,
먼 데서 들을수록
사무침만 오는 것이
어느 뉘 원혼冤魂에 우랴
삐이요르르르 삐이이요르르르.
땅에서 저지른 일이
하늘에 가 닿았을까.
골짜기로 흐르다가
산정山頂으로 치솟다가
구천을 맴도는 새야
삐이요르르르 삐이이요르르르.
혼자서 지은 죄罪를
혼자서만 뉘우치다
억새밭 노을이 지면
바람처럼 가는 새야
세상사 탄식歎息뿐이랴
삐이요르르르 삐이이요르르르.
금기禁忌 범한 사람들이
얼굴 들기 송구한 날
네 울다 떠난 자리
하늘 더욱 붉은 것도
임종臨終이 먼 데 있으랴
삐이요르르르 삐이이요르르르.
내일은 어느 등성이
구름결에 몰리다가
날개짓 서러워지면
허공에다 획을 긋고
단죄斷罪도 하늘에 맡기랴
삐이요르르르 삐이이요르르르.
♧ 시월에
시월엔 나무가 되랴
그 성그는 숲으로 가라
물빛 하늘 우러러
낙엽落葉을 준비하고
노을에
산창山窓을 열고
저녁불도 지피랴.
♧ 길
한 세상 사는 것이
다 길이라 하는 것을.
물빛 글썽이는
산山만 보고 가노라면
세월歲月은
소롯길로 와서
억새꽃을 피웠네.
노을녘 산마루엔
하늘만한 뉘우침이
웃자란 억새밭에
하얗게 눕던 날은
길 잃은
조랑말 한 마리
산山을 향向해 울었다
반평생 구빗길을
먼발치로 따라와서
때로는 이맛섭에
주린 듯 돋는 별빛
그 순명順命
비포장길에서
삐걱이는 내 수레여.
*고정국 시집 『진눈개비』 (도서출판 서울, 1990)에서
'문학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詩' 2021년 9월 399호 발간 (0) | 2021.09.03 |
---|---|
문태준 시집 '가재미'의 시들(2) (0) | 2021.09.01 |
김종호 시집 '잃어버린 신발'의 시들 (0) | 2021.08.30 |
권경업 시집 '자작숲 움틀 무렵'에서(1) (0) | 2021.08.29 |
한희정 시조집 '도시의 가을 한 잎'에서 (0) | 2021.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