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출봉日出峯 해돋이
몇 밤을 뒤척이다
섬을 베고 누운 바다
홀연한 내 여심旅心이
바닷새로 깃을 펴면
치잣빛 빈 수반水盤 위로
차오르는 남녘 아침.
동편 수평 가득
돛폭을 거느리고
팔방으로 눈을 뜨는
저 당찬 처녀 햇살
일출봉日出峯
긴 시름 딛고
심호흡을 하고 있다.
♧ 마라도馬羅道
까맣게 한 세월을
수평 끝만 적시면서
사무친 회귀回歸의 꿈에
저 홀로 야위는 섬
하늘도 이곳에 와선
뭍으로만 기우네.
뭍 소식 섭섭한 날은
바다마저 돌아눕고
파랑도 가는 뱃길에
잠겨버린 무적霧笛 소리
마파람 보채는 이 밤도
불을 끄지 못하는가.
차라리 외로운 날은
마라도에 가 앉으리
한 점 피붙이로
빈 해역海域만 떠돌다가
남단 끝
선명히 찍히는
낙관落款으로 앉으리.
♧ 탑동塔洞 바다
탑동 여름 바다는 밤에만 숨을 쉰다
욕망의 수심水深 깊이 죽순竹筍들이 일어서고
서부두西埠頭 젊은 밤배는 닻을 끌어 올리고 있다.
♧ 수악水岳의 추정秋情
1
속이 허허하여
산山이 문득 그리운 날
갈까마귀 단애斷崖에 우는
수악교 쯤 찾아들면
산빛도
시울이 깊은
먼 눈매를 적시며 온다.
2
아직도 이 산 어드메
핏자욱이 남았을 듯
우 우 우 산울음이
낙일 속에 잠겨오면
마지막
빨치산 홀로
고엽枯葉 밟고 가는 소리.
3
수악水岳 근처 나무에 지는
미사보 한 잎을 받아들고
산그늘로 덮여오는
먼 생각의 하산下山길엔
세월歲月이
억새밭 질러
갈피리를 불며 간다.
♧ 내 사랑 서귀포西歸浦 바다
유자차 한 잔에도
정情이 드는 서귀포西歸浦 바다
부르면 와 닿을 듯
유채밭만한 해역海域에서
동박새
붉은 울음만
뱃길 위에 떨구는 섬.
지금도 밤만 되면
그 젊은 별로 떠서
안개 속 성채城砦 같은
바닷속에 잠겼다가,
때로는
섬 끝에 올라
주린 눈길로 오는 불빛.
끝끝내 회귀回歸의 꿈은
섬 벽에 부서지고
선잠 깬 새끼섬*
바람 끝에 외롭던 날
칠십리七十里
퇴적堆積된 설움을
물안개로 포갠다.
---
*새끼섬 : 서귀포 앞바다 문섬 바로 옆에 있는 작고 뾰족한 바위섬.
*고정국 시집 『진눈깨비』 (도서출판 서울, 1990)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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