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고정국 시조 '내 사랑 서귀포 바다' 등 5수

김창집 2021. 9. 7. 00:07

일출봉日出峯 해돋이

 

몇 밤을 뒤척이다

섬을 베고 누운 바다

 

홀연한 내 여심旅心

바닷새로 깃을 펴면

 

치잣빛 빈 수반水盤 위로

차오르는 남녘 아침.

 

 

동편 수평 가득

돛폭을 거느리고

 

팔방으로 눈을 뜨는

저 당찬 처녀 햇살

 

일출봉日出峯

긴 시름 딛고

심호흡을 하고 있다.

 

마라도馬羅道

 

까맣게 한 세월을

수평 끝만 적시면서

 

사무친 회귀回歸의 꿈에

저 홀로 야위는 섬

 

하늘도 이곳에 와선

뭍으로만 기우네.

 

 

뭍 소식 섭섭한 날은

바다마저 돌아눕고

 

파랑도 가는 뱃길에

잠겨버린 무적霧笛 소리

 

마파람 보채는 이 밤도

불을 끄지 못하는가.

 

 

차라리 외로운 날은

마라도에 가 앉으리

 

한 점 피붙이로

빈 해역海域만 떠돌다가

 

남단 끝

선명히 찍히는

낙관落款으로 앉으리.

 

탑동塔洞 바다

 

탑동 여름 바다는 밤에만 숨을 쉰다

욕망의 수심水深 깊이 죽순竹筍들이 일어서고

서부두西埠頭 젊은 밤배는 닻을 끌어 올리고 있다.

 

수악水岳의 추정秋情

 

1

속이 허허하여

이 문득 그리운 날

 

갈까마귀 단애斷崖에 우는

수악교 쯤 찾아들면

 

산빛도

시울이 깊은

먼 눈매를 적시며 온다.

 

2

아직도 이 산 어드메

핏자욱이 남았을 듯

 

우 우 우 산울음이

낙일 속에 잠겨오면

 

마지막

빨치산 홀로

고엽枯葉 밟고 가는 소리.

 

3

수악水岳 근처 나무에 지는

미사보 한 잎을 받아들고

 

산그늘로 덮여오는

먼 생각의 하산下山길엔

 

세월歲月

억새밭 질러

갈피리를 불며 간다.

 

내 사랑 서귀포西歸浦 바다

 

유자차 한 잔에도

이 드는 서귀포西歸浦 바다

 

부르면 와 닿을 듯

유채밭만한 해역海域에서

 

동박새

붉은 울음만

뱃길 위에 떨구는 섬.

 

 

지금도 밤만 되면

그 젊은 별로 떠서

 

안개 속 성채城砦 같은

바닷속에 잠겼다가,

 

때로는

섬 끝에 올라

주린 눈길로 오는 불빛.

 

 

끝끝내 회귀回歸의 꿈은

섬 벽에 부서지고

 

선잠 깬 새끼섬*

바람 끝에 외롭던 날

 

칠십리七十里

퇴적堆積된 설움을

물안개로 포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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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섬 : 서귀포 앞바다 문섬 바로 옆에 있는 작고 뾰족한 바위섬.

 

 

                                        *고정국 시집 진눈깨비(도서출판 서울, 199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