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신석정 시인의 고택이 온전하길

김창집 2021. 9. 8. 00:31

고 신석정 시인의 고택인

비사벌 초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어,

고택이 있는 전북지역 18개 문화예술단체에서

고택보전 범시민운동에 들어갔고,

그 운동이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비사벌(比斯伐)’은 전주의 옛 지명이고

초사(草舍)’는 초가집이란 뜻으로

신석정 시인이 지어 1961년부터 여생을 보낸 곳이다.

 

항일 시인인 신석정(1907~1974)은 이 집에서

빙하’, ‘산의 서곡’, ‘댓바람 소리등을 집필했으며,

이병기, 박목월, 김영랑, 김남조, 박두진 시인 등

문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사랑방 역할을 했다.

 

전주시 미래유산 14로 지정된 문화재 비사벌초사는

근래 재개발 사업의 중심부에 들어 있어

헐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유럽 같은 곳을 여행해 보면

작가의 산실을 잘 보존하여 그곳을 둘러보도록 하여

관광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대표적인 항일운동 시인의 한 분이며

지금 교과서에 45편의 시가 실리고

신석정 문학상까지 제정하여 주어지고 있다.

 

재개발을 하드라도 지혜롭게 설계를 하여

비사벌초사때문에 오히려 동네 격이 높아지는

주택지로 개발하면 좋겠다.

 

꽃덤불

 

태양을 의논議論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달빛이 흡사 비 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터를 헤매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뜯지 않았느냐?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여섯 해가 지나갔다.

 

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에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

오는 봄엔 분수噴水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

그 어느 언덕 꽃덤불에 아늑히 안겨 보리라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지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야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새끼 마음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서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즈시 타고 나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서요

그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나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엉엉거릴 때

나와 함께 고 새빨간 능금을 또옥 똑 따지 않으렵니까?

 

들길에 서서

 

푸른 산이 흰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거니

 

임께서 부르시면

 

가을날 노랗게 물들이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호수(湖水)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포근히 풀린 봄 하늘 아래

굽이굽이 하늘 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파란 하늘에 백로白鷺가 노래하고

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볕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대바람 소리

 

대바람 소리

들리더니

소소蕭蕭한 대바람 소리

창을 흔들더니

 

소설小雪 지낸 하늘을

눈 머금은 구름이 가고 오는지

미닫이에 가끔

그늘이 진다.

 

국화 향기 흔들리는

좁은 서실書室

무료히 거닐다

앉았다, 누웠다

잠들다 깨어 보면

그저 그런 날을

 

눈에 들어오는

병풍의 낙지론樂志論

읽어도 보고……

 

그렇다!

아무리 쪼들리고

웅숭그릴지언정

-<어찌 제왕帝王의 문에 듦을 부러워하랴>

 

대바람 타고

들려오는

머언 거문고 소리……

 

 

                                                                 * 사진 : 물봉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