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 - 洪海里
혼자,
살다 보니
그냥,
살아지네.
그래,
살다 보니
홀로,
사라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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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더워지니 소화가 잘 안 되는지 속이 징건하다. 마당가 풋고추 몇 개 따 안주 삼아 막걸리 한 병으로 저녁을 때운다. 우이동 산바람이 시원하게 함께 해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거충거충 사는 데도 파근하고 대근하다. 지난 일 하나하나 오련해지니 무엇이 기억에 남을 것인가! - 隱山.
♧ 베이커 산의 사람꽃* - 김영호
베이커 산에 사람꽃들이 피었네
베이커 산에 사람꽃들이 피었네
베이커 산이 사람꽃밭이네
산을 오르는 사람들 산 마음을 얻어
사랑이 충만해지니
얼굴에 꽃이 피었네
사람들 산은 왜 오르는가
산마음을 얻기 위해서네
산마음은 사랑마음이네
사랑하면 사람이 꽃이 피네
사랑하면 사람이 꽃이 되네
산꽃들은 생전에 많은 사랑을 베푼 사람들이었네
산꽃들이 사람꽃들과 포옹을 하네
포옹을 하며 산꽃들 사람꽃들이 찬양을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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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워싱턴주 국립공원 고산.
♧ 속초항에 비 내린다 - 정숙
퍼붓다 못해 송곳날 내리꽂는다
쓰디쓴 커피를 마신다
쉼 없이 흔들리는 저 파도에 떠밀리어
이제 막다른 골목까지 오고 만 것인데
젊은 시절엔 저 주름고랑을 잡는다고
하얀 포말에 잡히려고 까불까불
해종일 시간 가는 줄 몰랐었지
이젠 이 세상의 파도가 너무 무서워
먹구름이 자꾸 밀려와
양귀비 주홍빛 요염 흉내 내보아도
웃는지 우는지 아리송한 표정
겹겹이 쌓인 갈피 속 내 모습만 뒤적이는데
어느새 가슴 깊은 곳
파문이, 너울성 파도에 휩쓸린다
커피 잔에 설탕을 마구 쏟아 붓는다
♧ 우울해서 – 박원혜
나 우울해서, 여행 가
나 우울해서, 말해
나 우울해서, 웃어
나 우울해서, 잠자
나 우울해서, 아무거나 다 해
우울해서 나,
말 안 해
우울해서 나,
잠 안 자
우울해서 나,
어디도 안 가
우울해서 나,
사람 안 만나
우울해서 나,
아무것도 안 해
♧ 별 – 도경희
심장에
별처럼 박히는 사람이 있어
선혈 맺히는 아픈 가슴 환하게 닦아내는
순금빛 노랑새 포롱거리면
서리치는 창공 가득
옛 애기로 피어나는 샛별 싸라기별
그리움은 비천무인가
숨소리 서러운
긴 삼동을 떠받쳐 주고 있어
♧ 그래도 가을이다 – 이대의
힘들다고 세상 탓만 하고 있을 건가
즐겨라
그래도 가을이다
가을이 아깝지 아니한가?
힘내라
살아 있다는 건 축복이다
*월간 『우리詩』 2021년 10월 400호에서
*사진 : 태풍이 지나간 뒤 10월초 해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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