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2021년 10월호의 시(1)

김창집 2021. 10. 8. 00:25

 

인생 - 洪海里

 

혼자,

살다 보니

그냥,

살아지네.

 

그래,

살다 보니

홀로,

사라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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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더워지니 소화가 잘 안 되는지 속이 징건하다. 마당가 풋고추 몇 개 따 안주 삼아 막걸리 한 병으로 저녁을 때운다. 우이동 산바람이 시원하게 함께 해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거충거충 사는 데도 파근하고 대근하다. 지난 일 하나하나 오련해지니 무엇이 기억에 남을 것인가! - 隱山.

 

베이커 산의 사람꽃* - 김영호

 

베이커 산에 사람꽃들이 피었네

베이커 산에 사람꽃들이 피었네

베이커 산이 사람꽃밭이네

 

산을 오르는 사람들 산 마음을 얻어

사랑이 충만해지니

얼굴에 꽃이 피었네

 

사람들 산은 왜 오르는가

산마음을 얻기 위해서네

산마음은 사랑마음이네

 

사랑하면 사람이 꽃이 피네

사랑하면 사람이 꽃이 되네

 

산꽃들은 생전에 많은 사랑을 베푼 사람들이었네

산꽃들이 사람꽃들과 포옹을 하네

포옹을 하며 산꽃들 사람꽃들이 찬양을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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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워싱턴주 국립공원 고산.

 

속초항에 비 내린다 - 정숙

 

퍼붓다 못해 송곳날 내리꽂는다

쓰디쓴 커피를 마신다

쉼 없이 흔들리는 저 파도에 떠밀리어

이제 막다른 골목까지 오고 만 것인데

젊은 시절엔 저 주름고랑을 잡는다고

하얀 포말에 잡히려고 까불까불

해종일 시간 가는 줄 몰랐었지

이젠 이 세상의 파도가 너무 무서워

먹구름이 자꾸 밀려와

양귀비 주홍빛 요염 흉내 내보아도

웃는지 우는지 아리송한 표정

겹겹이 쌓인 갈피 속 내 모습만 뒤적이는데

어느새 가슴 깊은 곳

파문이, 너울성 파도에 휩쓸린다

커피 잔에 설탕을 마구 쏟아 붓는다

 

우울해서 박원혜

 

나 우울해서, 여행 가

나 우울해서, 말해

나 우울해서, 웃어

나 우울해서, 잠자

나 우울해서, 아무거나 다 해

 

우울해서 나,

말 안 해

우울해서 나,

잠 안 자

우울해서 나,

어디도 안 가

우울해서 나,

사람 안 만나

우울해서 나,

아무것도 안 해

 

도경희

 

심장에

별처럼 박히는 사람이 있어

 

선혈 맺히는 아픈 가슴 환하게 닦아내는

순금빛 노랑새 포롱거리면

 

서리치는 창공 가득

옛 애기로 피어나는 샛별 싸라기별

그리움은 비천무인가

 

숨소리 서러운

긴 삼동을 떠받쳐 주고 있어

 

그래도 가을이다 이대의

 

힘들다고 세상 탓만 하고 있을 건가

 

즐겨라

그래도 가을이다

 

가을이 아깝지 아니한가?

 

힘내라

 

살아 있다는 건 축복이다

 

 

                                         *월간 우리202110400호에서

                                         *사진 : 태풍이 지나간 뒤 10월초 해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