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이대흠 시집 '귀가 서럽다'의 시(2)

김창집 2021. 10. 10. 00:35

어머니라는 말 - 이대흠

 

어머니라는 말을 떠올려보면

입이 울리고 코가 울리고 머리가 울리고

이내 가슴속에서 낮은 종소리가 울려나온다

 

어머니라는 말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웅웅거리는 종소리 온몸을 물들이고

어와 머 사이 머와 니 사이

어머니의 굵은 주름살 같은 그 말의 사이에

따스함이라든가 한없음이라든가

이런 말들이 고랑고랑 이랑이랑

 

어머니라는 말을 나직이 발음해보면

입속에 잔잔한 물결이 일고

웅얼웅얼 생기는 파문을 따라

보고픔이나 그리움 같은 게 고요고요 번진다

 

어머니라는 말을 또 혀로 굴리다보면

물결소리 출렁출렁 너울거리고

맘속 깊은 바람에 파도가 인다

그렇게 출렁대는 파도소리 아래엔

멸치도 갈치도 무럭무럭 자라는 바다의 깊은 속내

어머니라는 말 어머니라는

 

그 바다 깊은 속에는

성난 마음 녹이는 물의 숨결 들어 있고

모난 마음 다듬어주는

매운 파도의 외침이 있다

 

울 엄니

 

울 엄니 오래 사실 게다

콩 까투리에서 막 나온 듯

자잘한 새끼들

뿌리 잘 내리는가 보고 가시려고

팔순 넘어 구순 넘어도

눈 못 감으실 게다

 

울 엄니 돌아가시면

저승에 못 가실 게다

제 몸 헐어 만든 자식들

돋아주시려고

쇠스랑 같은 손으로

흙이나 파고 계실 게다

 

울 엄니 제삿날이면

절대 오지 않을 게다

마침내 든 편안한 잠

깨고 싶지 않을 게다

이승서 밀린 잠 자다

저승 생일도 잊을 게다

 

밥과 쓰레기

 

날 지난 우유를 보며 머뭇거리는 어머니에게

버려부씨요! 나는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이의 과자를 모으면서

멤생이 갖다줘사 쓰겄다

갈치 살 좀 봐라, 갱아지 있으먼 잘 묵겄다

우유는 디아지 줬으먼 쓰것다마는

신 짐치들은 모태갖고 뙤작뙤작 지져사 쓰겄다

 

어머니의 말 사이사이 내가 했던 말은

버려부씨요!

단 한마디

 

아이가 남긴 밥과 식은 밥 한 덩이를

미역국에 말아 후루룩 드시는 어머니

 

무다라 버려야,

이녁 식구가 묵던 것인디

 

아따 버려불제는,

하다가 문득……

 

그래서 나는

어미가 되지 못하는 것

 

주름

 

아침 일찍 일어나 빗소리 듣는 것은

햇차 한잔 쪼르릉 따를 때처럼 귀 맑은 것이어서

음악을 끄고 앉아 빗소리 듣노라면

웅덩이에 새겨지는 동그란 파문들이 모이고 모여서

주름을 이루는 것이 보이네

 

휘어지며 늘어나는 물의 주름을 보며

삶이 고달파 울 일 있다면 그 울음은

끄덕이며 끄덕이며 생기는

저 물낯의 주름 같은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네

 

도닥도닥 번지는 물의 주름처럼

밀물 썰물 들고 나는 뻘의 주름이나

늙은 어미들의 그 주름살이나

 

시간을 접어 겹을 만든 것들은,

더 받아들이려 표피를 늘인 것들은 ,

받아들인 아픔이 층을 이룬 것이어서

 

어머니

 

나는 나만 앓아도 이렇게 무거운데

도대체 바위는 누구를 그리 앓았나,

 

저 바위

같은 사람을 알고 있다,

 

받아들인 근심의 무게로

딱딱하게 굳어,

 

묻혀가는,

 

어머니의 나라

 

  어머니의 나라에서는 뜨거운 물을 땅바닥에 버리지 않는다 수챗구멍에도 끓는 물을 붓지 않는다 땅속에 살아있을 굼벵이 지렁이나 각종 미생물들이 행여 델까 고것들 모다 지앙신 자석들이라 지앙신이 이녁 자석들 해꼬지 한다고 노하면 집이 망해분단다 어머니의 나라에서는

 

  남은 음식을 버리지 않는다 그 나라 부엌의 수챗구멍 밑에는 염라대왕이 젝기장 들고 앉아 누가 먹을 것을 버리는지 살피고 있다 죽어 저승 갔을 때 한 톨 쌀을 한 가마로 쳐서 고걸 드는 벌을 슨단다 귀한 음석 함부로 하먼 쓴다냐 어머니의

 

  나라에서는 감을 딸 때도 까치밥 두어 개는 반드시 남겨 둔다 배고픈 까치는 물론 까마귀 참새 들까지 모두 제 밥이다 날아와 먹는다 가을걷이할 때는 까막까치 참새를 다 쫓지만 그 어느 것이라도 굶어죽는 건 우리 몸의 일부가 떨어지는 것이기에

 

  먹을 것 귀한 겨울에는 산 가까이에 시래기나 생선뼈를 놓아두기도 한다 배고픈 산짐승들 그걸 먹고 겨울 난다 때로 산토끼를 잡기도 하고 들고양이를 쫓기도 하지만 제아무리 고방 생선 훔쳐 먹는 도둑괭이라도 새끼 밴 암컷에겐 생선 대가리를 내어준다 행에나 새끼 밴 짐승 죽게 하먼 사람 새끼도 온전치 못하는 벱이다

 

  어머니의 나라에서는 똥오줌이 오물로 버려지지 않는다 땅에서 온 모든 것 땅에게 돌려준다 그마저 생오줌이나 생똥으로 갚는 게 아니다 사람이란 독한 짐승이라 사람 침에 뱀이 죽고 사람 발에 풀이 죽고 생똥 생오줌에 채소가 녹기에

 

  생오줌은 합수통에서 지글지글 끓여서 독기 다 뺀 후 무 배추 밑 돋우는 거름으로 쓰고 생똥은 짚풀과 섞어 한 육 개월 푹 삭힌다 어머니의 나라에서는

 

  나무 한 그루 함부로 베어내지 않는다 나무마다 신이 있어서 허락 없이 베어내면 살() 맞아 사람 목숨 하나가 끊어지기에 정히 나무 필요할 때면 막걸리 두 되쯤 바친 후 나무신 마음 먼저 풀어주고 톱 댄다

 

  죽어 땅으로 돌아갈 때도 잡초 우거진 빈 땅이라고 함부로 구덩이 만들지 않는다 파낸 자리마다 무덤자리라 뜻 없이 파낸 자리엔 사람 목숨 하나 눕게 된다는 머나먼 어머니의 나라에서는

 

 

                                       * 이대흠 시집 귀가 서럽다(창비, 2010)에서

                                                         * 사진 : 모성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