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경훈 시집 '수선화 밭에서'의 시(2)

김창집 2021. 11. 10. 00:20

경훈씨 그거 알아?

 

북촌 4.3기념관에서 같이 근무할 때

정군칠 시인이 팽나무를 보면서 말했다

 

팽나무는 순을 두 번 내매

첫 순은 고스란히 벌레들에게 주고

두 번째 순은 자신의 가지로 키우매

나도 나를 온전히 누군가에게 바치고

새 순 같은 삶을 살고 싶어.”

 

어느 날 문득 팽나무 옹이에서

시인의 마지막 길 퀭한 눈동자가 보였다

 

그대여,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그대여, 내가 보고 싶거든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거기 해가 있어 이글거리거든

그대 향한 불타는 마음이라 생각하라

 

내 목소리 그립거든

눈을 감고 바람소리 들으라

 

몹시 몰아치거든 나의 격정

한결 따듯하거든 나의 온기

언뜻 우울하거든

나의 한숨이라 생각하라

 

그 바람결에

그대 향내 온전히 느끼고 있나니

가 닿지 못하는 애달픈 마음이

비 되어 가슴 적시고 있나니

 

번개가 치고 벼락이 이는 건

새로운 인연 오려 저리 몸부림이니

그대여

 

내가 보고 싶거든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거기 구름 가득 낮아지거든

이제 내가 가까이 다 왔거니 생각하라

 

도안응이아*의 봄

 

평화의 봄은 왔지만

아직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네

 

우리 엄마도 돌아오지 않았네

그날 우리 엄마가 나를 구했다고

그걸 잊지 말라고

동네 사람들이 내게 말해주네

그래서 나는 엄마 더욱 보고 싶네

 

평화의 봄은 왔지만

아직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네

 

한번 잡은 사람의 손

그 촉감과 온기, 목소리를 나는 잊지 않네

그러나 나는 그러나 나는

엄마 얼굴 감촉이 어떤지 미루어

하나도 알 수 없네

 

언젠가 만날 엄마를 위해

나는 내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네

최선을 다해서 내 운명을 살아야 하네

 

평화의 봄은 왔지만

아직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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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응이아 : 베트남 꽝아이 민간인 학살 때, 단 한 사람의 생존자

 

윤회輪迴

 

처음엔 그냥 돌덩이었다가

이슬과 더불어 서리와 더불어

망자의 울타리가 되기도 하다가

바람과 더불어 구름과 더불어

기원의 탑이 되기도 하다가

꽃과 더불어 들풀과 더불어

기름진 흙이 되기도 하다가

먼지 되어 날리기도 하다가

가만히 내려앉아 뭉치고 뭉쳐

그냥 다시 돌덩이가 되어

물과 더불어 이끼와 더불어

해와 달과 별 벗하기도 하다가

 

오미자

 

오미자에게 문자 메시지로 은근히 수작을 부렸다

, 오미자 사랑해도 돼?”

 

오미자는 오씨 성을 가진 미자라는 이름의 여자가 아니라

김군 재인 조앤 영미 태나맘

강정마을 다섯 명 여성 지킴이들의 통칭이다

 

자기 걸로 하나라도 더 챙기려는 이 세상에

자신을 전혀 앞세우지 않고 뒤에서만 헌신하는

순정의 구도자들이 오미자, 바로 이들이다

 

바로 답장이 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열어보니

거부합니다, ㅋㅋ!”

 

아무리 거부한다 하더라도 나는, 오미자를 향한

순정의 짝사랑마저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산 품 오르는 길목

가시엉겅퀴꽃

바짝 독 올라

 

뭐 하다 이제 오나

 

산 발 내리는 길섶

술패랭이꽃

지친 날 보며

 

예 살지 어디 가나

 

 

                                        * 김경훈 시집 '수선화 밭에서' (각 시선, 202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