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방 있습니다 - 김진숙
산지천 불빛 찾아 흘러드는 달이에요
페인트 칠 벗겨진 골목의 시간 속으로
입간판 생의 화살표 그길 따라 오세요
그리움을 게우는데 한 달이면 넉넉해요
가물대는 후렴구와 꽃 벽지에 핀 얼굴들
그림자 등 시린 밤에 둥글게 떠올라요
날마다 흐릿해지다 지워지곤 한다는데
읽다가 돌아서면 밀려오는 항해의 기록
풍랑도 달래기 좋은, 달방 여기 있습니다
♧ 들국화 – 문태길
봄날 그리움이 꽃으로 핀 그녀
벌 나비 떠나버린 늦가을 벼랑 끝에
끝끝내 나를 기다려
향을
아껴 두었네
♧ 계절의 조화 – 이창선
자연의 아름다움
사계가 말해준다
하늘의 솜털구름
하트되어 흐른다
인간의 러브스토리
계절 따라 변한다
♧ 가시리 억새 – 조한일
늦가을 따라비오름 바다 같은 가시리
은빛 물결 출렁일 때 가리워진 그 아픔
온몸의 검붉은 자국 들여다 보았는가
바람이 부는 날엔 흔들리며 울다가도
억새여 들녘이여 시를 쓰듯 불러주면
긴팔을 휘어 저으며 답하는 휘모리장단
♧ 엉겅퀴 - 강상돈
마음 한편 찔러놓고 그리 매정할 수 있나
돌아보면 꽃망울이 환장하게 피어나서
붉어서 더욱 붉어서 앙갚음을 하는 꽃
♧ 무드내*의 봄 - 김연미
숨죽인 밥 냄새가 잿더미에 흘러요
타다 남은 희망을 삼켜도 될까요
이제 곧 넘을 수 있겠죠
창백한 무드내 겨울
총소리 사선마다 발자국이 쓰러져요
햇살의 살 끝에도 핏물이 번지네요
사는 건 어느 쪽인가요
뿌리가 흔들려요
흑백의 시간에도 공포는 붉어요
벙그물궤**를 지나 겨우 돌아온 봄
홑겹의 붉은 꽃들을
피워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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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강동의 옛 이름.
** 4.3 당시 군경이 쏜 총에 다리를 맞은 부순녀 씨가 두 달여 혼자 버려졌던 동굴.
* 『제주시조』 2021년 제30호에서
* 사진 : 돌오름의 가을(2021.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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