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계간 '제주문학' 2021년 가을호의 시조(2)

김창집 2021. 11. 12. 00:04

이애자

 

제 새끼 낳으면서 안 해본 일 없었다고 그 속 삭힌 세월 하나 둘 풀어놓으니

 

여태껏 맺힌 것들이 참 맑게도 흐릅니다

 

간섭과 관심 - 장영춘

 

아무리 부부 사이도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조금 더 다가가면 간섭이요 외면하면 무관심

 

아슬한 선과 선을 넘어

초점마저 흐려진 날

 

퇴직 후 구속 없이 살고 싶다던 그 사람

노란 점퍼 입은 거 보고 달려가는 나에게

 

관심은 무척 고맙지만

간섭은 말아 달라던

 

간섭과 관심의 차이, 동전 안과 밖 같은

게슴츠레 개나리가 내 어깨 툭툭 치며

 

그까짓 겉치레쯤이야,

그게 다 뭐라고?

 

꽃들도 썸 탄다 조한일

 

따라비오름 오르다 사스레피나무 스칠 때면

 

나무를 점거하고 웅성대는 암꽃 수꽃

오르막 군데군데 봄 오면 찰랑 딸랑

종소리로 유혹하고는 묘한 냄새 쓱 풍긴다

 

꽃들도 사람과 썸 탄다 암수가 따로 없네

 

운주당 수선화 - 한희정

 

꽃이 피는 뜻은 꽃만이 알 일이다.

달빛에 글을 읽던

수선*의 마음일까

정결한

꽃의 권리는

섬을 넘어 피었다

 

소명인 듯 운명인 듯 얼지 않는 향기였다

, 그 이름만한

걸음걸음 희망이길래

은반의

서릿발조차

가슴으로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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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선각자이며 애국지사인 우인 고수선을 말함.

 

갈매기 비행속도에는 외로움의 단위가 붙지 - 김연미

 

갈매기 비행 속도에는 외로움의 단위가 붙지

거리 두기 바위와 바위 그 점 이어보면

반비례 직선을 그으며 너의 실체가 보이지

 

겨울비 내리는 날엔 검은 고양이 소리를 내지

늘어진 감정처럼 잔물결 이는 바다

기꺼이 과녁이 되어 너를 불러들이지

 

상처의 깊이마다 저기압의 추를 달아

농도 다른 사랑으로 허물어지는 삼양바다

갈매기 날개를 접고 점이 되고 있었지

 

감저조밥 오영호

 

1

조밭에

조ᄏᆞᄀᆞ리*

고갤 숙일 때면

온종일 참새 떼가

점령군처럼 날아들어

주인장

속 타든 말든

주린 배를 채웠다

 

2

밥때면 온 식구들

낭푼이 앞 둘러앉아

모인조밥** 감저(甘藷)***만을

놋숟가락으로 파먹을 때

어버니

젖은 눈빛도

함께 말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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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삭. **찰지지 않은 노란 좁쌀로 지은 밥. ***고구마.

 

 

                                             * 계간 제주문학2021년 가을호에서

                                                * 사진 : 제주의 풍광(수채화 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