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애월문학' 2021년 제12호의 시

김창집 2021. 11. 18. 00:01

생명의 소리들 강연익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마음의 문을 열고 소멸과 생성의

뜨거워지는 생명의 소리를 듣는다.

 

아침 해가 하품하며 깨어나는 소리

지나는 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소리

담장을 오르는 담쟁이의 거친 숨소리

 

비밀을 감추고 꽃이 피어나는 소리

곤충이 허물을 벗는 소리

연꽃에 맺힌 이슬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깊은 밤에 골목을 누비는 발자국 소리

한밤중에 달리는 불자동차 소리

이 소리를 토해내는 내 심장의 울림소리

 

소리들로 까만 밤의 침실에 고요가

내 뜻과 상관없이 구름처럼 흘러갈 때면

이제 소리를 찾아 깊은 명상에 잠긴다.

 

내 영혼 머물 곳 강원호

 

헝겊눈이 흩날리는 모습을 본다

바람에 날려 리듬을 타듯

내려오다 어느덧 다시 올라가고

춤사위에 몸믕 실어 무아지경이다

나에게 유혹의 몸짓이다

내 영혼은 마냥 따라가고 있었다

눈발은 점점 짙어지고

내 영혼을 태운 헝겊눈은 펄펄

어딘가로 나를 인도하고 있다

7층 방 밖으로 따라간다

내 영혼 머물 곳은 어디일까

세상 온통 하얗게 덮은 곳 그 너머일까

 

구엄의 아침소리 김동인

 

늦은 봄 아침

연못의 맹꽁이 울음소리에 깨어나

마당에 나오니 워싱토니아 꼭대기를 차지한

까치가 반갑게 맞이한다.

입구 쪽 강아지 두 마리도 반갑다고 짖어댄다.

마당 한쪽 텃밭에 자리 잡은 닭장의 닭들도 구구구구

아침 인사를 한다.

 

이재수에게 묻다 김성주

 

대정골 이재수 생가 골목 빠져나온다

큰도로변 카페, 쇄빙기 소리 날카롭다

빙산이 무너진다

푹푹 눈이 내려 설산을 이룬다

설산 위에 십자가 꽂힌다

설탕에 버무려진 핏빛 팥물이 설산을 허문다

붉은 해수면이 무섭게 차오른다

십자가도 북극곰도 펭귄도 허우적거린다

 

나는 해수면 아래 잠겨버린 먼 옛날 신축년

그날의 함성을 찾아 종이배에 오른다

뼈대 있는 자리들과 매운 마늘 맛의 항로를 따라 섬 찾아간다

 

어쩌다 애월까지 김영숙

 

시어머니 꾸지람 멍든 보자기

주섬 주섬주섬 먹던 밥이며 색 바랜 가락지

죄지은 사람처럼

심장을 꽁꽁 묶는 들숨 날숨

 

열대 우림 짐승의 포효

동서남북을 잃어버린 외로운 편린

그리고 나를 부르는 환청

 

새벽이 내리려면

아직도 두어 시간이 남았는데

 

어찌하여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이곳까지 왔는가

 

기념일 - 김옥순

 

한 단계씩

진급해서 배지를 단 기념일이다

방탄이(태명) 덕분에

호칭을 하나씩 높이 달았다

 

딸아이와 사위는 엄마 아빠로

엄마 아빠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로

오빠와 동생은 외삼촌으로

 

이 세상에 와서 기쁜 날

참 고마운 인연이다

어서 와 환영한다 방탄아!

 

 

                                    * 애월문학회 간행 涯月文學2021년 제12호에서

                                 * 사진 : 애월읍 한담동 곽지해변길 풍경(수채화 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