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강문신 시조집 '해동의 들녘'에서(6)

김창집 2021. 11. 19. 00:07

      청도군과 이호우·이영도 문학기념회는 올해

      ‘이호우·이영도 시조문학상본상 수상자로

      제주 시조시인 강문신을 최종 선정했다는 소식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가을을 위하여

 

아니랑게요, 2~3일은 더 해사 된당게요.”

핸드폰 목소리에 땀 내움이 묻어난다

아줌마 팔도 아줌마들 웃음소리도 들린다

 

들개X도 축 늘어진 연일 폭염 속을

아랑곳없는 귤 묘목들 왁자한 그 새순들

좋은 놈 하나씩만 남기고 따내야 한다 모조리

 

옛 마당 병아리처럼 초롱초롱 그 눈망울들

제 손에 키운 저들을 따내는 가슴이사

안 된다,

추호의 편견도,

튼실한 가을을, 위하여!

 

떠난 바다

 

청보리밭 둔덕마다 새알만한 원을 두고

4월 해 죄만 같은 어질 머리 풀어두고

서귀포

기약도 없이

그냥 떠나버린 바다

 

충전 혹은 방전

 

저녁에 ᄒᆞᆫ잔 ᄒᆞ게마씀고명호 시인이다

시장통 올레수산 고등어회가 별미라며

귤 수확 시작하기 전 충전 좀 해두잖다

 

양기가 입으로 오른 팔순 한기팔 시인

경륜의 그 음담패설 솔깃 귀 기울이는

볼 붉힌 초겨울 밤만 흥건히 충전시켜놓고

 

강 통원 시인도 가고, 문충성 시인도 가고,

다들 다~ 떠나가고끝내 그 침통을

한 목청 노랫가락이나 어르느니, 서귀포

 

세상 풍경

 

수족관 물고기들은 아직도 바다를 꿈꾼다

각일각刻一刻한 접시 안주인 줄 모르고

다툰다 쌈박질한다 몇 백 년 살 것처럼

 

무시로 발겨지는 비명과 그 피 피비린내

심드렁 남의 일처럼 아예 감을 못 잡는

감히 날언놈이 건드려!” 기고만장 거드름

 

차마 못할

 

마을 청년 회장이던 스물다섯 적이었어

그땐 미신타파 운동 활발히 일었었지

여름철 청년단합대회를 지귀도地歸島서 열었네

 

소금막*에 돌아와 보니 전분공장 빈터에서

큰 굿이 한창이었어 청년들 우르르 몰려가

그 판을 다 엎질렀네, 문득 한곳을 보니

 

우는 듯 웃는 듯 창백한 환자가 누운 채

우릴 보고 있었어 덜컹 내려앉던 바다

며칠 후, 그녀가 죽었단 소문~ 그 가슴에 못! 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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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귀포시 하효마을의 작은 포구

 

인연

 

새벽 육묘장에 웬 강아지 와있었어

어디서 왔을까? 어떻게 왔을까?

이 들녘 여가 어디라고, 혼자 찾아 왔을까?

 

첫 눈에 펄쩍펄쩍 뛰면서 반기었어

흰색의 복스러운 야무진 그 눈 초롱

한 점도 낯설지 않아전생의 어느 연일까?

 

훌쩍 자란 그 개는 농장 이곳저곳을

나보다 더 돌아본다 일꾼들 두루 살핀다

혹 그때, 나의 부족을 여직 알고 있는 듯

 

연신 꼬리 흔들며 공손히 독려한다

무시로 산노루 출현엔 금세 눈빛돌변

매섭게 치타처럼 내달려 기어이 낚아채는

 

그 날 것 좀 잘라주면 퍽퍽 먹다 일부는 꼭

땅속에 묻어둔다 내일을 대비함이니

그러네, 나의 부족을 또 일깨움이니, 인연

 

 

                                     * 강문신 시조집 해동의 들녘(문학과 사람, 2021)에서

                             * 사진 : 시인의 고향, 서귀포시 하효동 올레5코스 해안길에서(201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