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경훈 시집 '수선화 밭에서'의 시(5)

김창집 2021. 11. 30. 01:00

숭어

 

걷잡을 수 없이

누군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

온 몸을 튕겨

운명을 잠시

비켜서기도 하지만

그 찰나의 해갈만으론

해저의 중력이

너무 깊다

운명의 완력이

질기디

질기다

 

대접과 그릇

 

그릇이 커야 대접을 받잖아요

그래요 나 그것 밖에 안 되어요

 

내 대접이 줄 땐 작지 않나

내 그릇이 받을 땐 크지 않나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잖아요 존재는

 

그릇이나 대접이나 내공만큼

그래요 채우거나 비워내면 그만

 

우울

 

  그대의 우울을 차라리 꽃이라 부르자 바다라고 산이라고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그리하여 생명이라고 부르자 그래도 정녕 못 견디겠거든 고개 들어 하늘을 보자 거기 별들이 있어 깜빡이거든 그게 우리의 마음이라고 생각하자 우울은 공포, 절망에 이르는 죽음의 길에조차 혼자 버려지나니, 이겨낸 그대는 더불어 꽃이 되고 생명의 벗 땀의 합창으로 나의 우울을 이름 지어 달라 바다라고 산이라고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그리하여 사랑이라고,

 

촌철살인寸鐵殺人

 

시인은

살인자다

 

촌철寸鐵,

 

능히

비인非人을 제압하는,

 

입맞춤

 

조개 속살처럼

차나무 새순처럼 여리고

 

문어 빨판처럼

동백꽃처럼 강하면서

 

솔치회처럼

꾸지뽕 열매처럼 달콤하며

 

날미역처럼

생강나무처럼 알싸하고

 

복어처럼

독버섯처럼 현란하며

 

성게알처럼

복수초처럼 화안한

 

뚱딴지

 

몸에 좋은 거라며 건네주는

누님 손에 뚱딴지 한 푸대

 

겨울 산밭을 언 손으로 파냈을

그 귀한 마음덩이 덩이들

 

백량금 천량금 만량금보다

백리향 천리향 만리향보다

 

오직 귀한 금이고

살 더운 향이라네

 

한 뿌리 잔뜩 베어 물고

누님 언 손 먼저 녹이리

 

 

                               * 김경훈 시집 수선화 밭에서(도서출판 각시선 046, 2021)에서

                 * 사진 : 바다고기(서문시장에서 회를 썰던 시인을 회상하며 내게 있는 사진을 다 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