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혜향문학' 2021년 하반기호의 시(1)

김창집 2021. 12. 2. 01:43

 

식물 사랑 이상범

 

서리 맞은 달개비 꽃

꽃망울을 열어봤다

언니가 두 동생을

업고 있는 형국이다

살아서 마지막 어부바

식물 사랑 눈물겹다.

 

 

모래가 되다 - 우은숙

 

무릎 접은 낙타의 겸손에 올라타고

둥근 가슴 몇을 지나 사구沙丘에 도착한 순간

시뻘건 불덩이로 핀 사막의 꽃을 본다

설렘은 떨림으로, 떨림은 두근거림으로

고요마저 삼켜버린 핼쑥한 지구 한 켠

응고된 지난 죄목들 모래 위에 뒹군다

나는 고해성사하는 신자처럼 엎드려

흠집 난 내 영혼을 달래줄 사막에서

모래와 하나가 된다, 한 알의 모래가 된다

 

 

귀뚜라미 강상돈

 

새벽녘 무슨 일로 이 자리에 찾아왔나

 

고약한 녀석일세, 경적마저 깨트리고

 

찌르르 검문을 하며 곤한 잠을 깨운다

 

 

백로의 독백 김대규

 

솔은 늙어도 푸르고

백로는 늙어도 희더라

 

늘상 혹은 때때로 날 보던 태양

그 볕발에

내 속살을 다 구워먹고

눈비 호되어도

이내 늙은 허리를 세워

마음 젖은 구름에 걸터 쉬다가

바다 너머로 날아간다

 

백로의 말을 들어보니

새들이 사람들보다

훨씬 자유를 한다

 

 

쇠테우리 강 씨 영감 김대봉

 

시방 난 멍에 벗은 쇠 고개턱 길을 걷네,

 

밭갈 쇠 하나만 있음 장남 부리며 살았겠지

 

여기도

 

밭갈 쇤 없네,

 

비육쇠만

 

놀고먹네.

 

 

소문처럼 전설처럼 - 김성주

 

  한 세상을 부수기 위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닥쳤네. 재선충 방제를 명분으로 고가사다리 전기톱 포클레인 최신의 무기를 끌고 왔네. 헬멧과 안경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저들이 처음엔 비바람에도 부러지는 잔가지들을 쳐내더니 몸통을 자르고 밑동을 자르고 포클레인으로 우지직 우지직 뿌리마저 캐내고 더 이상 꿈틀거림마저 포기한 것들을 확인사살까지 하는 것이네.

  눈이 푹푹 쏟아지던 날 물어물어 큰 소나무가 있다는 작은 암자를 찾아왔었네. 그때 나는 무슨 칠전팔기의 꿈을 안고 온 것은 아니지만, 핏물 낭자한 가슴 속 파편들을 다 꺼내어 드려다 보겠다는 수도자의 각오로 온 것도 아니지만, 비바람을 피하려고 덤불 속으로 날아드는 멧새처럼 여기 온 것이었네. 그러니까 30년 전 일이네.

  아무렇게나 버려진 나무토막을 보네. 버리고 온 둥근 밥상 크기의 원판엔 빼곡하게 글자들이 새겨져 있네. 나는 그 기록들을 읽을 수는 없지만, 생의 끝 부분을 여기에서 함께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짐작하는 바가 있어 저것은 왜가리 산비둘기 직박구리 딱따구리 까치 올빼미 거미 개미 매미 그 많은 식구들의 맑은 날이며 흐린 날들의 기록들이라 생각을 하는 것이네. 까막눈을 껌뻑이며 한숨처럼 나이테하고 뚱딴지같은 한 마디를 중얼거려 보네. 할머니 한 분이 유모차에 기대어 허공에 대고 한마디 툭 던지네. “ᄉᆞ태에 나 살던 동네가 이 모냥으로 소개되었주.”

  누구의 심장엔들 박힌 파편들이 왜 없겠나. 누구는 흔적이라 하고 또 누군가는 나이테라 부를 뿐인 것을.

  몇 대의 차량 위로 나무토막들이 실려지네. 화장터에는 미지의 세계로 가는 배가 출항을 준비하고 있겠네. 한 세상이 떠나고 나면 항구에는 물결만 일렁이겠네.

 

 

                           * 혜향문학회 간 혜향문학2021년 하반기 제17호에서

                                          * 사진 : 경주 남산의 마애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