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정형무, 시집 '닭의장풀은 남보라 물봉선은 붉은보라' 발간

김창집 2021. 12. 1. 00:30

 

시인의 말

 

  시의 싹은 사랑과 슬픔의 곁가지에서 움트며 자라납니다.

  묶어놓고 보니 웃을 때 울고 슬플 때 울 줄 알던 한 사람에 대한 것이 많습니다. 한 살이 깨우친 삶을 펼쳐보이고자 했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此身合是詩人未’, 늘 되새겨보는 구절입니다.

  장차 人間山水를 넘어보고 싶습니다.

 

                          2021. 가을

                               정형무

 

 

해름

 

명부전 모퉁이

차꽃 벙그는 해름

 

미륵전 뒤안에서

날개 꺾인 나비를 보았소

 

산허릿길 어둑한데

솔방울 함부로 떨어지는 소리

 

못 잊겠소, 속삭이면

깊숙이 피 냄새 배는데

 

저 가녀린 것들에게

얼마나 기대고 살아야 하나

 

설핏 저무는 하루

해름이 슬퍼서 울었소

 

 

나들이

 

물가 따라 걸어갑니다

새소리 풀벌레소리 시끄럽습니다

 

나비는 자꾸 따라오고

잠자리는 앉은 자리 앉으려 합니다

 

새빨간 열매가 흩어져 있고

아기다람쥐 한 마리 하늘 보고 누워 있습니다

 

물봉선은 보이지 않고

이삭여뀌 우거져 길을 지웁니다

 

바람도 일지 않는데

산열매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골짜기 건너편에는

은사시나무들이 떨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

물에 잠긴 산 그리메에게

자꾸만 돌팔매질을 하였습니다

 

 

바람난 여자

 

삼월에 집 나간 여자

꽃이랑 놀다 꽃바람 나서

목메도록 안 오는 여자

 

달 뜨는 저녁 소곤소곤

비 오는 밤마다 찰방찰방

약 든 가슴* 아니 맞추고

큰바람 큰물에 쓸려간 여자

 

바람 따라 저 구름 따라

천지에 쑥처럼 흩어진 여자

산열매 한가로이 떨어지는 날

흥얼흥얼 산모롱이 돌아오려나

 

에헤야, 춘삼월에 집 나간 여자

섣달그믐 숫눈 밟고 돌아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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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전춘별사

 

 

복사꽃

 

꽃무더기 들여다보면 어른거리는 것 있다

처녀귀신이 산다

 

붉은 꽃술에 입 맞추면

상사로 꽃이 된 처자

그 꽃 입술 여닫으며 더,,, 떤다

 

청천에 날벼락 치고

붉으락푸르락 꽃이 진다

 

꽃밭에는 비수를 문 처녀귀신이 산다

 

나는 오래된 꽃나무 구멍 속 부러진 날개로

꽃이파리 더불어 웅크려 있다

 

 

여름이 여름하면

 

  저놈의 타래난초 개울 건너 피었는데 물 불어 여울을 못 건너네 한 줄기 똑 따서 그 이름 가르쳐준 목덜미에 꽂아주고 싶은데 울울한 모양새 가깝고도 멀리 있네

 

  나 그 길을 따라가지 못했네 목청껏 부르짖어야 했는데 허벅지라도 저며야 했는데 손가락 깨물어 따뜻한 피조차 먹여 보지 못했네

 

  닭의장풀은 남보라 물봉선은 붉은보라 어이 가르쳐 주셨나 붉푸르게 멍든 이름들

 

  여름이 여름하여 독기를 품었네 나도 울지 않고 우는 법을 배웠네 가슴속 만질 수 없는 임은 눈감아야 글썽 보이네

 

 

     * 정형무 시집 『닭의장풀은 남보라 물봉선은 붉은보라』 (우리詩움, 202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