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경훈 시집 '고운 아이 다 죽고'의 시편들

김창집 2022. 4. 6. 00:16

 

  처음 생각으로는 43죽이는 방법을 중심으로 하나의 시집을 엮으려고 했다.

  쓰다 보니 욕심이 지나쳐 여기에 죽이는 이유가 들어가고 결국 두 권으로 나눠서 발간하게 되었다. (중략)

 

  어쨌든 43은 내 인생의 화두일 수밖에 없다.

  평생을 걸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나의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도서출판 각의 대표인 박가가 선뜻 이 시집을 맡겠다고 할 때 써온 보람을 느꼈다.

 

  ‘날 것으로 세상에 던져진 이 시집에는 많은 사람들의 고마운 땀이 담겨 있다.

 

                                                                  -작가의 후기에서

 

 

 

돈질

 

그 장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다시 보면

 

어머니가 몸에 지니고 있던 돈다발을 그들에게 던졌고

민보단장이 나를 옆으로 밀쳐 백경사의 눈에 들게 했고

강순경이 줄에서 빼내어 밭도랑 쪽으로 걷어찼고

이순경이 발사한 순간 그 줄의 사람들이 다 죽어갔다

 

그들은 돈을 갈라 가졌고

어머니와 나는 목숨을 나눠가졌다

 

 

 

동업

 

독일 101부대의 한 병사가 아침식사를 하는 부대장을 찾아가 말했다

저는 아직 아무 것도 안 먹었습니다

?”

아직 유태인을 한 명도 못 죽였기 때문입니다

 

삼양지서 정주임이 말했다

난 하루에 제주놈 하나 이상 안 죽이면 밥맛이 없는 사람이야!”

 

 

 

삽 구워

 

장작불 피워서

삽들을 얹어놓고

역시 말고기는 검은기름이 최고야

거나하게 술 곁들여

말씹내 나도록 배부른 다음

산폭도 끌어내

벌건 삽날로

등땡이 후려치고

땅 파듯 내리찍어도

 

아직 안 죽었니?

그럼

곡괭이 구워!

 

 

 

이 모가지 임자 손들어

 

너희들

도피자 가족들은 모두

교실로 모여

엎드려

지근지근 밟아 죽이기 전에

말해

빨갱이 새끼들 어디 있어

몰라?

그럼 내가 보여주지

이 책상 위에 모가지들이 보이지

똑똑히들 봐

자 이 모가지 임자 누구야

 

그날 책상 위에 추가된 금방 잘려 철철

피 흐르는 싱싱한

모가지 하나가 입을 열어 말했다

 

아이고 나 아덜이우다

어디 있다 잡현 영 험허게 죽어시냐

이 놈덜아

어느 세상에 영헐 수가 있나

이 백정놈덜아

 

 

 

내 말 안 들려

 

이 새끼야

내 말 안 들려

내말이 좆같다 이거지

말하면 듣는 척이라도 해야 할 거 아냐

이런 쌍놈의 새끼

내 말이 말 같지 않다 이거지

귀에 바람구멍 내줄까

이제 내말 들려

귓구멍이 뻥 뚫렸잖아

씨발놈의 새끼

끝까지 안 듣네

 

양쪽 귀에 총알이 관통되어 죽은

삼촌은

귀머거리였다

 

 

 

한라산 전사의 마지막 노래

 

이대로 끝나지 않으리라

순결한 조국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죽창 쥔 내 손에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분노로 일렁이는 그날의 함성

숯불처럼

투쟁의 불씨를 일구리라

거대한 해일로

다시 솟구칠 그날을 위해

이 한 목숨 이슬같이 바치리라

 

내가 죽어 나라가 산다면

 

 

                        *김경훈 시집 고운 아이 다 죽고(,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