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제주 '4․3 추념 시집'의 시(1)

김창집 2022. 4. 4. 00:00

 

관탈섬을 보며 - 강덕환

 

모든 인연 접고 우선

저 무인의 섬으로 가자

순지오름 꽃놀이’ * 뒤로 하고

곽개창파 일렁이는 저 해협에서

삭탈削奪의 통한

잠시 숨 골라 잠재우고

 

다시 돌아올 기약이야 없다마는

떠나야 하리, 등 떠미는

이산離散의 길에

눈에 밟히는 한라산, 도두봉

그리고 아버지의 마지막 당부

내 눈이 닿는 곳에서는 죽지 마라

 

반세기 만에 찾아와서 본

저 돌섬, 그대로인데

시인**의 눈엔 이슬인 듯 눈물이 맺힌다

 

회한과 그리움만이 아니다

아직도 이념의 갓벗지 못해

흥정하는 이전泥田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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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시종이 증언하는 43봉기의 신호탄을 알리는 암호문

**김시종 시인

 

 

*강요배 작 '장두'

 

관덕정더렌 댕기지 말라

 

해가 바뀔 때마다

토정비결 책력을 보시는 아버지

자식들 가운데 유독 장남인 내게 하시는 말씀

운수 좋은 해나 없는 해 가리지 않고

단골처럼 입에 발린 말 있네

 

정해년 삼월 일일 관덕정 앞

경찰서 망루에서 퍼부은 총탄에

오라리 동네 형이 쓰러질 때

곁에 서 있던 여덟 살 소년의 가슴에도

총성이 박혀

평생 천둥을 품어 안고 살아왔네

 

두 해 지나 기축년 유월 팔일

관덕정 앞 경찰서 입구에

한 사내의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린 것을 보았네

박박 얽은 그 얼굴 기억나지 않아도

가슴에 꽂힌 가메기숟가락은 잊히지 않아

소년이 아버지가 된 후 십수 년 동안

밥상 위에 얹혀 있었네

 

꽃은 소리 없이 지고 또 피어

속절없이 시간을 밀어내는 동안

가메기숟가락 밥상머리 떠나 돌아오지 않았지만

망구望九 넘기고도 변함없이 쏟아지는 말

관덕정더렌 댕기지 말라

 

 

 

재고再告 - 김경훈

    -남매상봉기념비

 

1.

아버지 어머닌 큰오빠가 산에 숨었다는 이유로 끌려가 죽고

큰오빠는 6.25사변에 심어당 바다에 들이쳐 불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 없던 둘째 오빠가 살았젠

북한에서 우리 보고싶덴 허는 편지가 왔젠 헙디다

경핸 양말도 몇 켤레 사놓고 갈 걸로 준비해신디

그냥 딱 중단되어수다 남북이 꽁꽁 얼어불지 안해수꽈

 

2.

우리 식구들이 북한으로 가서 둘째 오빠를 만났습니다

22세에 이별한 오빠를 만나보니 백발이 성성한 80

오빠를 만나 번창한 가족들과 함께 있음을 확인하고

이에 식구들 이름을 비에 새겨 묘 앞에 세우노니

벅찬 감격과 기쁨만 간직하고 극락왕생하기를

 

3.

이제 어머니 아버지보다 더 늙은 오빠와 내가

언제 같이 이 무덤가에 와서 절을 해질 건고예?

어머니!

아버지!

 

 

 

몽돌 속에는 용암이 산다 - 김성주

 

  섬의 몽돌 속에는 용암이 산다

 

  용암을 품은 몽돌들은 설문대 여신의 손금, 그 ᄆᆞ른 내창 바닥에 제 화를 누르며 바짝 엎드려 있다 어쩌다 먹장구름이 세상을 가려줄 때 여신이 울고, 그 부끄러운 눈물 속에서 몽돌들은 온몸 비틀며 통곡을 해보는 것인데, 여신이 손금은 언제나 말라 있고 용암이 몽돌을 부수고 뛰쳐나오는 일은 없다

 

  훌쩍 20년이 지났구나! 그날 나는 화산재 한 줌 바다에 뿌리고 용천수로 목을 축이며 이런 생각에 잠긴다 몽돌 하나가 어떻게 폭발하는지 섬은 왜 속울음으로 용천수를 만드는지

 

  관덕정 광장 43행사장 인파 속에 전시된 사진들 거기 마지막 산사내의 사살된 시신 그 앞 얼어붙은 폭도새끼인 나와 그 사내의 동생, 그 뒷날부터 잠시 숨어 있던 흉흉한 소문들이 가시로 돋아나고 우리는 옥죄어오는 통증 탈출을 위해 버둥거린 것인데, 나는 아직도 갇혀 있고, 친구는 소문의 진원지라 생각되는 친족 집을 불태우고 경찰에 구속되기 전 눈오름 소낭 가지에 목을 맨 것인데, 통증 탈출을 한 것인데,

 

  무섭다

  산벚꽃 몽우리 돋을 때쯤 바싹 마른 4의 바닥 거기 뒹구는 몽돌들, 숨어 우는 용천수들

 

 

 

네 살짜리가 뭘 안다고- 김수열

    -김성주

 

  오도롱 주재소였다

  얘야, 착하지? 산에서 있었던 일, 다 말해보라, 어른들이 뭘 했는지, 아네? 뭐라 말했는지, 생각나네? 아는 거이, 생각나는 거이, 다 말해보라,

  고럼, 사탕 주가서

 

  오도롱 폭낭 아래였던가

  허이고, 착하지이? 산에서 배운 노래, 불러보라, 원수와 더불어, 알아? 날아가는 까마귀야, 생각나멘? 아는 냥, 생각나는    냥, 한번 불러보젠?

  게믄, 사탕 주커메

 

 

 

꽃염불 소리 - 김신숙

 

형님, 종아리에 묶었던 모래주머니 흩뿌려지듯

꽃염불 소리 가득합니다

백 년 전 태어난 형님은 땔감 쓰던 시절이라

민둥산이었지요

백 년 후 걷는 이 산은 이갈이 하는 산입니다

유월 육일*이면 때죽나무 심정이 되지요

올해도 사람들 다시 돋아 앞서고 뒤따르며

산노래 맞으러 눈물 뿌리는 종꽃 맞으러

북받친밭으로 나아갑니다

조릿대 사이로, 길이 아닌 길로

꽃잎이 아닌 첫니를 다라

유격대들은 총알을 피해 읊조릴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들은 철부지 아시들

백 년 전 죽음을 백 년 후 세계로 불러와

산전까지 까아악 까아악 엉클며 갑니다

덕구 형, 덕구 형 부르며 그 길을 갑니다

너무 이른 죽음이라 꽃이 나립니다

우리 형 다리는 새의 심장처럼 날렵했다지요

형님, 살던 봄날도 잇몸처럼 물컹했습니까

호미처럼 손을 걸어 산전에 절하고

흙 묻은 손바닥 펼치면 붉은 꽃 푸른 꽃

이복형제처럼 덧나고 부풀어 아리지만

세월이 흘러도 늙지 않는 첫니

꽃염불 소리를 베개 삼아요

치아가 나리는 이 숲은 당신의 입속입니다

죽은 사람들 입속에서 첫니가 돋는 길,

산 사람들 머리 위로 생니가 떨어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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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66일이면 인민유격대장 이덕구를 기리는 사람들이 이덕구산전을 찾아가 제를 올린다.

 

 

          * 제주43 73주년 추념시집 거기, 꽃 피었습니까(한그루, 202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