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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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시집 '뿌리의 노래'의 시(6)

김창집 2022. 4. 3. 06:55

          *오늘은 74주년 4.3 희생자 추념일입니다.

 

 

무명천 할머니

    -월령리 진아영

 

한 여자가 울담 아래 쪼그려 있네

손바닥 선인장처럼 앉아 있네

희디 흰 무명천 턱을 싸맨 채

 

울음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울음이 되는

그녀, 끅끅 막힌 목젖의 음운 나는 알 수 없네

가슴뼈로 후둑이는 그녀의 울음 난 알 수 없네

무자년 그 날, 살려고 후다닥 내달린 밭담 안에서

누가 날렸는지 모를

날카로운 한발에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턱

당해보지 않은 나는 알 수가 없네

그 고통 속에 허구한 밤 뒤채이는

어둠을 본 적 없는 나는 알 수 없네

링거를 맞지 않고는 잠들 수 없는

그녀 몸의 소리를

모든 말은 부호처럼 날아가 비명횡사하고

모든 꿈은 먼 바다로 가 꽂히고

어둠이 깊을수록 통증은 깊어지네

홀로 헛것들과 싸우며 새벽을 기다리던

그래 본 적 없는 나는

그 깊은 고통을 진정 알 길 없네

그녀 딛는 곡마다 헛딛는 말들을 알 수 있다고

바다 새가 꾸륵대고 있네

지금 대명천지 훌훌 자물쇠 벗기는

베롱한 세상

한 세상 왔다지만

꽁꽁 자물쇠 채운 문전에서

한 여자가 슬픈 눈 비린 저녁놀에 얼굴 묻네

오늘도 희디흰 무명천 받치고

울담 아래 앉아 있네

한 여자가             (2003)

 

 

 

울멍 마농 먹듯*

   -고내리 홍 보살님**

 

말할 수 있을 때 말하리

왜 이리 살았느냐 묻지 마라

왜 홀로 사느냐 묻지 말라

손엣 가시 하나도 상처라는 세상

내 나이 스물다섯, 광기 어린 쇠좆매 후려쳐도

거듭 거듭 이름 불지 않았다

거꾸로 매달려 물벼락 육신 젖어도

결단코 지목하지 않았다

 

피못 박힌 가슴

무자식 청상에 눈물 바람 일어도 시어미 몰랐다

보리 훑고 미녕 지을 때

바늘땀에 내 눈물 꿰고 있던 것을 누구도 몰랐다

재 묻은 옷 벗을 날 없던 설운 청상

마실 가던 날 기억하지

시어미 몰래 무명 저고리 가슴에 품고 갔던

산중허리께 넘어서야 그 옷 살짝 바꿔 입던

스물셋 사상도 모른 저 남편

지금도 절집 후원 한 칸 머리맡에서 흑백으로 웃고 있는

목포형무손지 어딘지 모르나 행불이라지

맨 처음 10년 세월 삽작문 방싯해도

가슴 설령였다 행여 내 사랑인가

바람 없는 날에도 대문소린 왜 그리 허걱댔나 몰라

와다닥 가슴 깨지는 소리로 들렸는가 몰라

보름 이운 달빛 한 그리매 어른거려 나가 본다

그대 없는 먹구슬낭, 그 아래서 왈칵 북받쳤다

바람길로 오시나

바닷길로 오시나

가슴벽 파고 도는 숯등걸 달래며

울멍 마농 먹듯

그 소리 지나온 법당 사십 년

새벽 3시 예불에 몸을 달랬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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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며 마늘 먹듯

*갓 결혼해 제주시 오라동에서 살다 43 당해 남편 행방불명. 200381.

 

 

 

1995826, 현정생 할머니*

 

성산포 오조리 한칸 초가

삐걱거리는 툇마루, 그 아래 싸리비 매달려

매달린 그 귀퉁이로

고집스레 늙어가는 둥근 바다엣 것 하나

칼바람 소리 내며 둥둥

바다 위를 쓸며 그렁그렁 쉰기침 소리 내고 있다

그 둥근 소리 흔들거리는 그녀의 집

그물망 촘촘히 거미의 집 짓는 소리 듣는 그녀

아흔다섯인가 여섯인가 아직은 희미하지만

그 셈이 무슨 상관이람

어린 것 열셋 놓고 반타작했다는

그 생애의 그물코 아래서

이젠 서슴없어라 왈랑왈랑 드러내도 부끄럽지 않네

무말랭이 같은 묵은 젖가슴

이것이 그래도 스물 댓 살 적엔

핏댕이 놓자마자 떨궈놓고

물질 나설 땐 가릴 게 없었주

탱탱 밀빵처럼 부풀어 멀건 젖살

벙그렇게 바다에 뿌렸다네

물릴 데란 오직 빈 몸 받아주는 바다뿐

젖살 스물 살

물오른 오지항아리만한 가슴엣 젖

한 번에 여섯 차례 들락날락, 숨 팔고 숨 열어

풀고 풀어 놨으니 아흔다섯 생

현무암 각질처럼 굳은 살

지금도 아른거린다

아깝고 아까워라

그녀 쥐어 짠 젖살 먹고 저 바다 지금도

통통 살 올랐겠거니

해초가 먹고 수초가 먹고 풀풀 자랐겠거니

바닷물에 씻길 대로 씻겨져

대천바다로 흐르겠거니

이젠 누구하나 딱딱하게 굳은 살 모른 척할 뿐이라네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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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읍 오조리에서 평생 해녀로 살면서 자식들 키웠다. 199596.

 

 

                           *허영선 시집 뿌리의 노래(당그래, 200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