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용길 시집 '빛과 바람의 올레'의 시(1)

김창집 2022. 5. 1. 00:04

 

 

올레 풍경

 

마당을 나오면

곧바로 올레다

 

이른 계절 돌아드는 바람

누가 오지 않아도

하루 종일 참세 떼 지저귀는 길

구름 몇 점

나뭇가지에 걸려 펄럭이다 말고

허공 펄펄 날아가는 길

서둘러 간다고

빨리 갈 수 있는 길도 아닌

바닷가 섬 하나

손짓하는 길.

 

 

 

올레 마을

 

올레가 길면

마당도 깊어라

 

울담 하나 사이 두고

() 풀어 나누고

 

인심(人心)이야 잘 익은 된장 맛이지

구불구불 이어진 동네길

오멍 가멍 마주치멍

 

어디 감수과앙?”

혼져 옵서게

고찌 가게마씀

손 나래치는 올레길.

 

 

 

칠십 리 올레(1)

 

바다를 등지고

바람 따라 내려간다

꼬리말아 감추고

멀리 달아나는

푸른 물살들

소금 빛 햇살에

발가락이 시리다

칠십 리 길 어디냐고

누가 묻걸랑

바닷길 메우는 바람소리

들어보라 한다.

 

 

 

 

칠십 리 올레(2)

 

()이 내려온다

청심(淸心)의 하늘 비워두고

슬금슬금 내려와

길을 막아선다

 

돌아가는 길

따라오는 산그늘

휘파람새 멀리 날아간다

 

칠십 리 올레길은

산을 넘고 들을 건넌다

가을처럼 흔들며.

 

 

 

새벽길 산보

 

새벽처럼 일어나

올레길을 간다

눈곱 낀 풀잎들이

살 비비며 일어난다

고무신에 하얗게

이슬 고이고

밤새 떨어진 별빛 같은

풀씨들

발끝에 채인다

 

아직은 거너 숲

새벽 단잠 베고

어둠은 길게 누워 있는데.

 

 

 

오름길을 오르며

 

오름() 반쪽 등에 지고

길을 오른다

쉬엄쉬엄 올라도

숨이 턱에 닿는데

길섶 잔솔밭 그늘은

바람 잔뜩 품고 있다

 

친구야 잠시 쉬어 가자꾸나

마음 한 자락

풀숲에 눕히고

저 멀리 굽이도는 길

석양처럼 넘어가는

계절을 본다.

 

 

 

들녘 길을 가며

 

억새들이 모여

몸에 묻은 햇살을 털어내고 있다

들녘 길 막아선 채로

빈 몸에 된 억새풀들은

바람으로 흔든다

 

가을은 가다말고

허공으로 올랐다

 

바람에 불리는 햇살

풀씨들이 날린다

저 빛나는 가벼운 존재

꿈의 씨앗들

 

들녘 길을 간다

가다 말고 가만히

귀 기울면

몰래 따라와 옷깃에 묻는

억새풀씨 소리.

 

 

                                     *김용길 시집 빛과 바람의 올레(서울문화사, 2010)에서